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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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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한제국 시대에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해 발행된 토 지소유 문서를 증명하는 지계(地契)이다.

고종은 1897년 10월,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친 다음 원구단(圓丘壇)에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후 1899년에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함으로써 제1조에 대한국은 세계 만국이 공인한 자주독립 제국임을 명문화하였고, 군 통수권⋅입법⋅행정⋅사법⋅외교⋅인사권 등의 모든 권한을 황제가 갖는 전제 군주국임을 표방하였다.

고종 황제는 국가의 자주권을 지키며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해 이른바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광무개혁은 특히 경제 부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는데, 정부는 1898년에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하여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함으로써 전국 토지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합리적인 조세를 부과하여 국가의 재정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였다. 이후 1901년에 중추원의관 김중환이 토지 소유권의 이전을 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서의 발행이 시급함을 상소하였다. 그에 따라 의정부참정 김성근이 「지계아문직원급처무규정」을 작성하였고, 그것이 칙령 제21호로 공포되면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인 지계를 발급하는 지계아문(地契衙門)이 설치되었다. 이후 지계아문은 양지아문을 통합하였고, 지계의 발급과 토지 조사 사업을 함께 실시하였다.

토지를 조사하는 양전 사업과 지계의 발급은 전국 군⋅현의 약 2/3에 달하는 218개 군에서 시행되었다. 이 사업은 토지 제도의 근대화에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무엇보다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제도를 도입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04년에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양전 사업을 계속할 수 없었고,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규정이 일본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계의 발급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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