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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 학회 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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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서북 학회 월보 창간호의 표지와 서울에 있는 서북 학회 회관의 모습이다.

서북 학회는 1908년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출신 인사들이 서울에서 조직한 애국 계몽 단체이다. 대한제국 말기에 일제의 압박으로 국권 회복 운동이 어려워지자, 기존의 서우 학회한북 흥학회가 통합되어 창설된 학회이다. 서북 지방민으로서 국권 회복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고, 회원이 약 2,50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임원으로는 안창호, 박은식, 이동휘 등이 있었다.

이에 앞서 일제의 침략에 대항했던 많은 애국 계몽 단체가 있었다. 먼저 독립 협회의 국권⋅민권 운동이 실패한 후, 1905년에 헌정 연구회가 의회 설립을 통한 입헌 정치 체제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1906년에는 대한 자강회가 설립되어 교육 진흥과 산업 육성 등 실력 양성을 통한 국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 두 단체는 모두 일제의 탄압으로 1년여 만에 해산되었다. 그 후 1907년에 비밀 결사 단체인 신민회가 결성되는데, 대성 학교, 오산 학교 등을 세우고 민족의 산업을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등 실력 양성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신민회 또한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인해 1911년에 무너지고 말았다.

서북 학회는 여타 단체와 마찬가지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민중의 계몽과 신교육의 보급을 위해 노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입헌 공화국을 수립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기관지로 『서북 학회 월보』를 간행하여 사회 진화론과 민권론에 기반을 둔 새로운 개혁론을 민중에 전달함으로써, 민중 의식을 계발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후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독립전쟁 전략을 채택하여 해외에서 독립군 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일제에 의해 1910년 9월에 강제 해산되었다.

현재 서북 학회 회관이 남아 있다. 원래 종로구 낙원동에 있었던 붉은 벽돌의 이 현대식 건물은 일제시기에 오성학교, 보성 전문학교 등의 교사로도 사용된 적이 있는데, 1970년대 후반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철거된 뒤 1985년에 지금의 건국대학교 교정에 복원되었다. 2003년 6월 30일 등록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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