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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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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899년에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연결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모습이다.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체결 이후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항을 개항하면서 통신⋅교통 분야에서 새로운 근대 시설을 갖추어 나갔다. 통신 분야에서는 1885년부터 전신이 설치되어 서울과 인천, 의주, 부산을 연결하였고, 1896년에는 최초로 전화기가 설치되었다. 교통의 발달은 철도의 부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국내 철도 규칙이 1896년에 제정된 후 대한 철도 회사와 궁내부서북철도국이 설치되는 등 자력으로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자력으로 자금 조달이 어렵게 되자, 일본에 의해 경인선이 최초로 부설되었고, 이후에 개설되는 경부선(1904)과 경의선(1906)도 일본 주도로 이루어졌다.

사실 경인선은 처음에 미국의 철도 회사와 합작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자금난에 의해 미국이 철수하면서 일본이 이권을 챙겼던 것이다. 경인선은 최초 노량진과 인천을 이었던 다음해인 1900년에 한강 철교가 준공되자 노량진에서 서울 사이가 개통되면서 서울~인천의 완전한 노선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동양에서는 인도와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철도가 건설되었다.

철도는 근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교통수단이었지만,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 경의선이 러⋅일 전쟁 당시에 일본의 군사적 목적에 의해 가설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더욱이 일본은 철도를 부설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토지와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철도를 파괴하려는 조선인을 공개 처형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철도는 이후 식민지형 경제구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근대 문물의 수용은 조선 사회를 빠르게 변모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식인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 근대 의식이 생겨났고, 사회 모습뿐만 아니라 생활 모습까지 많은 변화가 뒤따랐다. 그러나 근대 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많은 자금과 기술은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하여 많은 이권이 열강들에 의해 침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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