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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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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한매일신보』와 대한매일신보 편집국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되어 1910년 8월 28일자까지 간행되었던 일간 신문이다.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정부는 개화 정책을 알리고 국민 계몽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언론 활동을 적극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1883년에 박문국을 설치하여 한성순보를 간행하였고, 대한제국 시대에는 최초의 순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의 간행을 적극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 간행된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은 서민층과 부녀자들층에 큰 호응을 얻으며 민권 의식의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베델(Ernest Thomas Bethell, 裵說, 1872~1909)이 발행 겸 편집인이 되고, 양기탁(梁起鐸, 1871~1938)이 총무가 되어 창간되었는데, 처음에는 순 한글로 간행되다가 1907년부터 국한문과 영문을 추가하여 세 종류로 발행되었다. 집필에는 박은식, 신채호, 최익, 장달선, 황희성 등 민족주의자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등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고, 황성신문제국신문과 함께 국채 보상 운동에도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이렇게 항일의 일선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 통감부는 1907년에 신문지법을 제정하여 언론을 강력히 탄압하였다. 통감부베델을 추방하기 위하여 여러 공작을 벌였고, 양기탁국채 보상금에 대한 횡령 혐의로 구금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베델이 물러나고 그 비서였던 영국인 만함(A. W. Marnham, 萬咸)이 사장이 되었지만, 그마저도 1910년 6월에 떠나면서 대한매일신보는 결국 8월에 폐간되고 말았다.

이후 경성일보가 대한매일신보를 인수하여 제호를 ‘매일신보’로 줄인 뒤, 경성일보의 자매지로 발행이 되었다. 이후의 매일신보는 일본인이 사장을 맡았고, 따라서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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