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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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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886년(조선 고종 23)에 미국 북감리교회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M. F. Scranton)이 서울 정동에 설립한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인 이화 학당(梨花學堂)의 모습이다.

조선은 개항 후 서양의 근대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근대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1883년에 최초로 근대식 학교인 원산 학사와 동문학과 같은 교육 기관이 설립되면서 근대 학문과 외국어 등을 가르쳤다. 이후로 정부 주도에 의해 많은 학교들이 세워지는데 양반 자제와 선비들을 뽑아 영어, 수학 등을 가르쳤던 육영 공원과 신식 군대와 장교를 양성했던 연무 공원 등이 1880년대 세워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배재 학당, 이화 학당과 같은 사립 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근대 교육에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 중 이화 학당은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개항 이후 근대 의식이 싹트고 신분에 따른 차별이 완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이화 학당은 조선 사회에 새로운 여성관을 세우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나설 수 있게 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화 학당이 초창기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스크랜턴이 열의를 가지고 학교를 세운 첫 해의 여학생은 단지 1명뿐이었고, 이듬해엔 7명이 전부였다. 아직까지 사회 인식이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887년 고종이 스크랜턴의 노고를 알고 친히 ‘梨花學堂(이화 학당)’이라는 교명을 지어 현판을 내려주자 점차 관심을 끌게 되었고, 1893년에는 30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이화 학당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사회 인식은 크게 성장하였다. 1898년에는 양반 부인들이 ‘여권통문’이라는 글을 황성신문에 발표하여 여성의 권리를 갖기 위해 여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여성 교육 운동 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하고, 이듬해에 순성 여학교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후로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달라져 갔으며, 여성들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이화 학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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