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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YMCA 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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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11년 평양, 선천 등지로 원정 경기에 나선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인 황성 YMCA 야구단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 체육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 왕실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장려하였다. 그것은 국민의 건강 증진뿐만 아니라, 체육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을 계몽하고 새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1896년 5월에 훈련원에서 첫 운동회가 개최된 후, 해마다 규모를 키워 결국 연합운동회로까지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후 근대 스포츠가 본격화된 시점은 1920년에 조선 체육회가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배체제로 말미암아 많은 간섭과 통제를 극복해야만 했다.

야구는 1905년에 YMCA 총무였던 미국인 필립 질레트(Philip Gillette, 吉禮泰, 1874~1939)가 YMCA 소속의 청년들을 모아 야구단을 조직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최초의 야구 경기는 1906년에 훈련원에서 개최된 덕어 학교(독일어 학교)와의 시합으로, 근소한 차이로 YMCA 야구단이 졌다고 한다. 초기의 야구단은 제대로 된 야구 도구를 갖추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야구 규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이해하고 전력이 상승하게 된 것은 1909년에 열린 동경 유학생 야구단과의 시합이었다. 이때 현격한 차이로 지기는 했지만 많은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이듬해부터 Y.M.C.A라고 새겨진 유니폼도 착용하게 된다. 야구단은 1911년 서북 원정에 나서 오산, 숭실, 대성 학교의 연합팀을 완파하고 평양과 선천 등지에서도 연승을 달렸다. 이후 일본으로의 원정 경기와 미국 메이저리그 팀과의 시합 등을 통해 수준을 향상시켜 나갔다.

한편 1911년에 발생한 105인 사건으로 YMCA 부회장이었던 윤치호가 수감되자, 필립 질레트는 윤치호의 석방과 105인 사건의 부당성을 호소하였다. 그로 인해 조선 총독부가 YMCA에 압력을 가하였고, 결국 질레트는 사표를 던지고 1913년 중국으로 떠났다. 우리나라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질레트는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도 소개하여 한국에 정착시키는데 공헌한 인물로서, 근대 체육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한국의 독립운동도 지지하였으며, 스스로 ‘길예태(吉禮泰)’라는 이름을 만들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던 사람이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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