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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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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892년부터 1904년까지 주조되어 쓰였던 2전 5푼짜리 백동화이다.

1894년 「신식 화폐 발행 장정」에 의해 은본위제가 시행되자, 본위화폐 5냥 은화와 보조화폐로 1냥 은화, 2전 5푼 백동화, 5푼 적동화, 1푼 황동화 등 모두 5종류의 화폐가 주조되어 통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위 화폐인 은화는 극소량만 주조되고, 보조 화폐인 백동화만 다량 주조되며 백동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사회 경제적 모순이 극화되었다.

한편 1904년 8월에 대한제국은 일본과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며, 재정 고문에 일본인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를 임명하였다. 메가타는 1905년 1월 ‘화폐 조례’를 공포하고 화폐를 주조하던 전환국(典圜局)을 폐지하였다. 그런 후 조례에 신구(新舊) 화폐의 교환과 환수에 관한 항목을 명시하고, 백동화를 회수하기 위해 전국에 교환소를 설치하였다. 이른바 조선의 화폐를 일본 제일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로 바꾸는 ‘화폐 정리 사업(1905~1909)’이 실시된 것이다. 이때 백동화는 상태에 따라 갑⋅을⋅병 3등급으로 나누어 교환해 주었는데, 갑종은 액면가 그대로 2전 5푼을, 을종은 1전으로, 병종은 아예 바꿔주지 않았다. 그에 따라 국내의 상공업자들과 민간 은행들이 큰 타격을 입고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일본 상인들은 미리 알고 대비하여 많은 이익을 챙겼다.

이후 일본의 제일은행은 국고(國庫) 업무를 맡았을 뿐 아니라, 통화 발행권⋅대출⋅관세 징수 등의 업무도 처리하였다. 그 결과 대한천일은행, 한성은행과 같은 민족 은행들은 몰락하거나 일본 은행에 종속되어 버렸다.

이러한 화폐 정리 사업은 일본의 화폐가 한국에 널리 통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준비 단계로서, 재정 정리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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