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의 수난

경복궁 근정전 앞에 걸린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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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경복궁 근정전 앞에 걸린 일장기의 모습이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대한제국 광무 9) 조선을 ‘보호국’화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왔다. 이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의 파견한 사건을 빌미로 강제 퇴위를 당하고, 일본은 또다시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행정의 모든 부분에서 통감의 지도와 승인을 받게 하였다. 통감부신문지법보안법 등을 공포하여 언론 및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군대까지 해산시켜 결국 대한제국을 무력화시켰다.

1909년에는 일본 내각 회의에서 비밀리에 한국을 완전 식민지로 병탄하기로 의결하였다. 그러나 그 해 10월 안중근(安重根)에 의해 이토가 저격당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그러자 다음 해에 현역 육군대장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통감으로 보내 헌병경찰제를 채택하는 등 본격적으로 한국 병탄에 박차를 가하였다. 당시 한국인 경찰관 약 3,200명, 일본인 경찰관 약 2,000명, 일본인 헌병 약 2,000명, 한국인 헌병 보조원 약 4,000명, 일본군 2개 사단 등이 전국에 배치되었고, 데라우치이완용을 총리대신으로, 박제순을 내부대신으로 하는 내각을 구성하였다.

데라우치는 1910년 8월 22일 형식상의 어전 회의를 개최하고, 이완용 내각이 한일합병의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하였다. 일본은 조약 체결을 비밀에 부치고 원로 대신들을 연금한 뒤, 8월 29일에 이른바 ‘한⋅일 병합조약’ 체결을 반포하였다. 일본은 조선 총독부를 세우고 초대 총독데라우치를 임명하였다. 조선 총독은 일본 국왕에 직속되었고, 행정⋅입법⋅사법⋅군사통수권 등의 권한을 모두 가진 존재였다. 이로써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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