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의 수난

경무부와 헌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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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함경북도 경무부와 경성 헌병대 본부 인원의 단체사진이다. 나란히 세워진 간판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당시 헌병대가 경찰 업무까지 맡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대한제국 광무 9) 조선을 ‘보호국’화하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그 결과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왔다. 이후 대한제국은 고종헤이그 특사의 파견으로 강제 퇴위를 당하고,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이 체결되어 행정의 모든 부분에서 통감의 지도와 승인을 받게 되었다. 통감부신문지법보안법 등을 공포하여 언론 및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군대까지 해산시켜 대한제국을 무력화시켰다.

1909년에는 일본 내각 회의에서 비밀리에 한국을 완전 식민지로 병탄하기로 결의하고, 이듬해 8월 29일 한⋅일 합병 조약을 체결하였다. 초대 조선 총독으로는 현역 육군대장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부임하였다.

그는 한국 민족의 격렬한 주권 회복 운동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하여 무관 통치를 기본으로 채택하였다. 그에 따라 1910년 6월에 헌병 병력을 경찰 병력과 통합하여 헌병 경찰제를 제도화시켰다. 이 제도를 통해 헌병은 일반 경찰 임무까지 담당하면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즉결 처분권을 행사하는 등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 당시 총독부는 2만여 명의 헌병 경찰과 헌병 보조원을 전국에 배치하여 무단 통치를 자행하였다. 이들은 일반 치안업무와 함께 독립 운동가의 색출, 정보 수집 등을 주요 업무로 하였다.

1910년대 조선 총독부무단 통치 하에 실시되었던 헌병 경찰제총독이 행사한 군대 통수권을 잘 반영해주고 있는 증거이다. 당시 헌병대는 법제상으로 육군대신 관할 하에 있었지만, 직무에 있어서는 총독의 직접 지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헌병 경찰제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조선 총독부의 통치 정책이 문화 통치로 급선회하면서 폐지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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