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의 수난

흥남 조선 질소 비료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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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일본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 1873~1944) 재벌이 운영하였던 흥남 조선 질소 비료 공장의 모습이다. 회사의 정식 명칭은 조선 질소 비료 주식회사로서, 1927년 5월 일본의 질소 비료 주식회사가 자본금 1,000만엔을 투자하여 흥남에 설립한 동양 제일의 황산암모늄 비료 회사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 일제는 우리 민족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 데 박차를 가하였다. 이른바 한국인을 일본의 ‘천황’에게 충성하는 백성으로 동화시키겠다는 ‘황국 신민화 정책’ 혹은 ‘민족 말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글과 말을 쓰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하였고, 우리와 일본이 동일 민족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여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 일선동조(日鮮同祖) 등을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면(面)마다 신사를 짓고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으며, 우리 민족에게 일본식 성명을 쓰도록 하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이와 아울러 일제는 세계 경제 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강행하여 한반도를 병참 기지로 이용하려는 정책을 펴나갔다.

침략 전쟁이 확산되면서 일제는 한국의 공업화가 필요하게 되자, 종래의 농업 위주의 식민 정책에서 농공 병진 정책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 조선의 공업화를 서둘렀다. 이는 병참 기지로서 한국의 공업화도 필요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세계 경제 공황에 빠진 일본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국을 새로운 투자지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 진출한 일본의 독점 자본에는 유수한 일본 재벌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흥남 질소 비료 공장도 일본 자본 가운데 대표격인 노구치 재벌이 운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출 업종도 전기, 화학, 기계, 금속 등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 공업과 군수 공업의 원료를 획득하기 위한 철, 석탄,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 광업 부분에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는 여러 공업 지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업 지대가 주로 지하자원과 수력 자원이 풍부한 북부 지역에 편중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보다는 일본 독점 자본의 이득을 위한 배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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