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의 수난

조선 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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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20년 남산 중턱에 세워진 일본의 신사(神社)인 조선신궁(朝鮮神宮)과 이에 참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신궁은 일본의 건국신과 한국을 병탄하고 1912년에 죽은 메이지왕(明治王)을 제신(祭神)으로 두었던 곳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 일제는 우리 민족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는 데 박차를 가하였다. 이른바 한국인을 일본의 ‘천황’에게 충성하는 백성으로 동화시키겠다는 ‘황국 신민화 정책’ 혹은 ‘민족 말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글과 말을 쓰지도 배우지도 못하게 하였고, 우리와 일본이 동일 민족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여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 일선동조(日鮮同祖) 등을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면(面)마다 신사를 짓고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으며, 황국 신민의 서사(誓詞)를 강제로 암송 제창하도록 하였다. 더욱이 일제는 우리 민족에게 일본식 성명을 쓰도록 하는 창씨개명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일제는 한국을 병탄한 1910년부터 신사 정책(神社政策)을 수립하고, 각 지역에 관립 신사를 세우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1912년부터는 조선 신사(朝鮮神社)를 세우기 위해 서울 남산에 자리를 정하고 예산을 편성하여 일을 추진하여, 1920년에 15개의 건물과 돌계단 등을 건립하였다. 일제는 1925년에 사격을 높여 조선신궁이라고 하였다.

일제는 1930년대 들어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사상 통일이 필요하였고, 그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신사 참배 강요로 이어졌다. 이에 한국에서는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 전쟁을 치르고 전시 동원 체제에 돌입한 일제는 신사 참배 거부자를 모두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치안 유지법⋅보안법 등을 적용해 투옥시켰다. 이때 신사 참배 거부로 투옥된 이가 약 2,000여 명에 이르고, 200여 곳의 교회가 폐쇄 되었다고 한다. 일제의 이런 강요에 의해 신사 참배자 수는 계속 증가하여, 1930년에 38만여 명이던 참배객이 1942년에 264만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은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해 저항적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민족사적으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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