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일제 식민 통치와 민족의 수난

국민 정신 총동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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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30년대 이후 본격적인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조선인을 상대로 한 황국 신민화 정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선전한 국민 정신 총동원 포스터이다.

일제는 1930년대에 들어와 세계 경제 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하나로 묶는 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한반도를 병참 기지로 이용하려는 정책을 펴나갔다. 그리고 중일 전쟁을 도발하여 본격적인 대륙 침략에 나서면서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여 전시 동원 체제를 확립하고, 한국에도 이를 적용하여 식민지 통치의 방향을 침략 전쟁의 지원에 두었다.

일제는 전쟁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지원병이나 국방 헌금을 독려하고, 창씨개명, 일장기 게양, 신사 참배, 일본어 사용 등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결국 황국 신민화를 강요하여 민족 말살 정책을 강화한 것이었고,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을 용이하게 하는 물밑 작업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1938년에 지원병제⋅징병제를 실시하여 우리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또한 군수 산업에 종사할 노동자를 확보하려고 징용제를 실시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일본, 중국, 사할린, 동남 아시아 등지에 강제로 끌고 갔다. 그리하여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군수 사업장에서 혹사당한 끝에 목숨을 잃는 등 일제의 침략 전쟁에 희생되었다.

특히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본은 더 많은 병력과 병참 지원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42년에는 대규모 국민 동원 계획이 수립되었고, 1943년에는 기존의 지원병 제도학도 지원병 제도가 추가로 실시되어 학생들마저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갔다. 그리고 제한적으로 실시해 온 징용을 점차 적용 범위를 확대하여 1944년에는 국민 징용령을 통해 남녀를 불문하고 징용을 실시하여 후방의 병참 지원 인력으로 동원하였다. 이렇게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았으며, 귀국하지 못하고 현지에 눌러 앉게 된 경우도 허다하여, 오늘날까지도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존해 있다.

1939년에서 광복 때까지 강제로 끌려간 사람은 적어도 650만 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국외로 끌려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우리 민족이 국내에서 일제의 소위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 강제로 혹사당했기 때문에 결국 우리 민족 전체가 일제의 침략 전쟁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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