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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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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마지막 의병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채응언(蔡應彦, 1879~1915)으로 1915년 성천에서 체포된 후 찍은 사진이다.

일제에 주권을 강탈당하기 이전의 항일 운동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였던 의병은 ‘남한 대토벌 작전’과 같이 일본군과 헌병 경찰의 강력한 공격으로 그 기세가 꺾여 점차 인원수가 줄어들고 활동 범위도 좁혀져 갔다. 이에 국권 피탈을 전후하여 많은 의병 부대가 만주, 연해주 등 국외로 이동하여 그 곳에 새로운 의병 근거지를 마련하고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하면서 의병 전쟁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국내에 남아 있던 의병들도 소규모적이고 산발적이기는 하였지만 1915년까지 일제와의 항전을 계속하였다.

특히 서북 지방에서 활약한 채응언이 대표적이었는데, 그는 1915년에 체포되어 사형될 때까지 항일 의병 전쟁을 끊임없이 전개한 인물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채응언은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능중면(陵中面) 고익리(高益里)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유인석 계열의 서태순 의병 부대에 투신하여 활동하였이다. 채응언은 빈농 출신으로서 1907년 고종이 폐위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 당하는 등의 국권이 침탈받자, 의병에 참여하여 평안도⋅강원도⋅함경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그는 주로 강원도 이천, 함남 안변, 평남 성천, 황해도 곡산 등지를 옮겨 다니며 소수정예의 유격 전술로 일제의 주재소와 통신 시설 등을 파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일제는 채응언을 체포하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까지 내걸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15년 7월 평안도 성천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 중 일본 군경에 체포된 후, 같은 해 9월 평양 복심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에 평양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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