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민족⋅독립 운동의 전개

대한인 국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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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10년 미국에서 조직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대표모임의 한 장면이다. 대한인국민회는 재미 한인 교포의 친목단체이자 독립운동 단체로서 미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독립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그 중 미주지역은 서구 열강의 호응을 얻어내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곳이었다. 미주 지역에는 19세기 후반부터 한국인 이민자 수가 계속 증가하였고,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 점차 민족 운동 단체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하와이에는 일찍이 신민회(新民會)가 결성되면서 여러 단체가 생겨났고, 1907년에 한인합성협회(韓人合成協會)로 통합되었다. 본토에서는 안창호(安昌浩)의 지도로 샌프란시스코에 공립협회(共立協會)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 등이 설립되었다.

그러다가 1908년에 친일 미국인이었던 스티븐스를 장인환(張仁煥), 전명운(田明雲) 등이 저격하는 사건을 계기로 여러 단체를 통합하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와 본토의 공립협회가 통합하여 국민회(國民會)가 조직되었다. 그 후 대동보국회마저 통합되면서 명칭이 대한인국민회로 변경되었다. 안창호대한인국민회의 대의원, 순행위원, 헌장수정의원 등을 지내고, 1915년에 중앙총회 제3대 총회장에 선출되는 등, 대한인국민회의 초기 활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미주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대한인국민회는 미주 본토에 북미 지방 총회를, 하와이에 하와이 지방 총회를, 멕시코에는 멕시코 지방회를 설치하였다. 그 후 시베리아 지방 총회, 만주 지방 총회를 산하 단체로 포함시켜 명실 공히 해외 한인의 지도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중앙 총회를 두고 그 산하에 4개 지방 총회와 116개의 지방회를 설치하였다. 기관지로 『신한민보』를 발간하여 국내외에 배포함으로써 민족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고, 세계 정세 변화와 민족 운동의 진행 사항을 보도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재미 한인은 국권피탈 전에 한국을 떠난 사람들로서 한국의 병합을 절대 반대하고 일본 정부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재미 한인에 관계되는 일은 공사를 막론하고 일본 정부나 관리를 통하지 않고 한인 사회와 직접 교섭한다.”는 내용으로 한인과 일본인의 대우를 구별해 줄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하여 승인을 받았다. 이 조치로 인해 대한인국민회가 미국 내에서 재미 동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공식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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