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민족⋅독립 운동의 전개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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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國務領)이었던 이상룡(李相龍, 1858~1932)의 모습이다. 경북 안동에서 이승목(李承穆)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본관은 고성(固城)이고 자는 만초(萬初), 호는 석주(石洲)이다. 초명은 상희(象羲)였으나 1911년 서간도(西間島)로 망명 후 상룡으로 개명하였다.

그는 1900년대 초반까지는 주자학적 이념으로 무장된 보수적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였지만, 점차 주자학적 현실 대응방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자강운동이라는 새로운 활동 방식에 눈을 떴다. 그는 주자학적 보편주의의 중심틀인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중화주의로부터 탈피하고 계약론에 근거한 새로운 국가관을 수용한 것이다. 또한 신분제적 사고로부터 벗어난 대중의 역량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약육강식의 진화론적 사유와 연결되면서 민족의 힘을 강성하게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족주의로 나타났다.

1911년에 서간도로 망명한 그는 산업⋅교육 우선주의와 군사 중심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항일민족독립운동 방략을 세웠다. 그리하여 만주에 군사 기구인 군정부를 설립했다가 3⋅1 운동 이후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설치되자 이를 지지하면서 군정부를 서로 군정서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서로 군정서 책임자로서 1921년에 남만 통일회를 개최하였고, 서간도 일대의 항일 단체와 독립군단을 통합하여 대한 통군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2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령에까지 취임하였는데, 임시 정부 내에서 사상 대립과 파쟁이 일어나자 사임하였다.

서간도로 돌아온 이상룡정의부, 신민부, 참의부로 나뉘어 있던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1932년에 길림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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