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민족⋅독립 운동의 전개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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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는 1927년 민족 유일당 운동으로 조직된 민족 운동 단체이다. 신간회의 모태는 조선 물산 장려회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과 서울 청년회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계열이 제휴하여 만든 조선 민흥회였다. 한편 일제 탄압으로 활동을 봉쇄당한 조선 공산당 계열은 민족주의 좌파와 제휴하여 민족 협동 전선 구성을 추진하여 그 해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이와 같은 상황이 민족 유일당신간회 창립의 배경이 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 2월에 창립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후 신간회는 전국 각지에 조직을 확산시켜 140여 개의 지회를 구성하였다. 만주와 일본에도 지회를 조직하였으며 4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여 일제 치하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 단체로 성장하였다. 신간회는 강령에서 기회주의를 일체 배격하며 자치 운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신간회는 창립 직후 순회 강연단을 구성하여 전국 각지를 다니며 민족 의식과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민족 당면 과제로 농민 교양의 함양, 경작권의 확보, 일본인 이민의 반대, 조선인 본위의 교육,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획득, 협동 조합 운동 전개, 염색 의복 착용과 단발 장려 등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회 운동을 적극 지원하여 농민⋅노동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지원, 수재민 구호 활동, 재만 동포 옹호 운동, 한국인 어부들의 권익 옹호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여러 지방에서 민중 대회를 개최하여 민족 운동을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신간회는 출범 직후부터 일제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며, 얼마 되지 않아 계열 간의 이념 대립이 재발하고,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갈등으로 인해 원활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다가 정책 노선을 변경한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은 사회주의 계열이 민족주의자와의 협동 전선을 포기함으로써 신간회는 1931년에 해체되고 말았다. 신간회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한 최초의 민족 통일 단체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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