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민족⋅독립 운동의 전개

조선 의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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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38년 김원봉(金元鳳)의 주도에 의해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무장 독립부대로 중국 우한시(武漢市) 한커우(漢口)에서 결성되었던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모습이다.

1937년 7월 일제의 중국 침략으로 중일 전쟁이 일어났다. 중국내 한국 독립운동 세력들은 이를 한국 독립을 위한 적극적 투쟁의 기회로 인식하였고, 이에 따라 각 독립운동 세력의 연합과 행동 통일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 국민당을 중심으로 우파 계열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연합하여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를 결성하였고, 조선 민족 혁명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1937년 11월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여 연합하였다. 김원봉은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대표로서 무장부대 창설을 적극 추진하였고,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의 지원을 이끌어내, 1938년 10월 무장 독립 부대인 조선의용대를 결성하였다.

조선 의용대는 성립 초기에 병력이 100여 명 정도 이었으나, 나중에는 340여 명 정도까지 확대되었다. 최초의 편대는 김원봉이 지휘하는 본부 부대와 박효삼(朴孝三)이 지휘하는 제1구대, 이익봉(李益鳳)이 지휘하는 제2구대로 편성되었다. 조선 의용대는 중국 국민당 정부군과 함께 양쯔강 중류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주로 정보 수집과 포로 심문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 의용대 내에서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화북과 만주로 이동하여 적극적으로 무장 투쟁을 전개하자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1939년 말에는 일부 병력이 북진 지대를 결성하여 북상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40년 9월 중국 국민당의 지원 속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대로 한국 광복군이 창설되었다. 1941년 1월에는 중국 국민당 군이 중국 공산당 군을 공격하는 완난(晥南)사변이 일어나 중국의 국공 합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1941년 봄 진보적 성향의 조선 의용대 대원들이 북상하여 화북 태항산 지역의 중국 팔로군 지역으로 이동해 가서, 7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결성하였다. 이후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조직인 조선 의용군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북상하지 않고 남아있던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한국 광복군에 편입하기로 결정하고, 의용대 총대장이었던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 겸 제1지대장에 취임했다. 이로써 광복군은 조직과 군사력이 동시에 증대될 수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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