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사회 운동과 민족 문화의 발전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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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역사가이다.

일제 강점 이전의 신채호는 주로 언론 활동을 하며 민족 의식의 고취와 계몽 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기자로 있던 『황성신문』과 주필이었던 『대한매일신보』에 당당한 시론(時論)과 역사 관계 사론(史論)을 게재함으로써, 일제의 불법성을 비판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 주는데 노력하였다. 특히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하였던 「독사신론(讀史新論)」은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해 서술한 최초의 한국 고대사로서, 민족의 일어남과 쇠락함을 연구함으로써 민족의 정신을 담은 역사를 만들어가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등의 집필은 민족적인 위기에 처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민족 영웅에 관한 전기를 읽도록 하여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혼)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일제강점 이후 신채호는 ‘폭력’에 의한 민중 직접 혁명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승만 등이 주장한 외교 방략을 비판하며 심지어 일부분에 있어서는 반민족적인 행위로 규탄하기까지 했다. 그의 혁명 노선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글이 의열단장 김원봉의 요청에 의해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1923)이다. 이 글에서 일본은 강도로 표현되어 있다. ‘천억 장의 신문, 잡지가 한 번의 폭동만 못하고, …… 민중 속으로 가서 민중과 손을 맞잡아 끊임없는 폭력(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신채호는 이 선언에서 폭력을 혁명의 수단으로서 정당화하는 등 무정부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그는 1925년에 무정부주의동방연맹에 가입하였다.

신채호는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역사서의 집필을 쉬지 않았다.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등이 1920년대 들어서 집필한 책들이다. 신채호민족주의 사관은 일본 식민주의 사관에 대항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의 글에 투영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의 혼과 자긍심을 일깨우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신채호는 1928년 무정부주의동방연맹 국제 위폐 사건에 연루되어 대만 기륭항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여순 감옥에 투옥된 신채호는 1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1936년 2월 18일 뇌일혈로 쓰러져 57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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