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사회 운동과 민족 문화의 발전

조선어 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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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조선어 학회(朝鮮語學會)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생존자들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다(1946).

국학 운동은 민족 문화를 수호하고 민족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민족 운동의 하나로 항일 독립 운동과 함께 꾸준히 추진되었다.

국어 연구는 1921년 장지연, 이윤재, 최현배 등에 의하여 조선어 연구회가 창립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학술 연구 단체로 출발한 조선어 연구회(朝鮮語硏究會)는 한글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조선어 연구회는 전국 주요 도시 10여 곳에서 월례 발표회를 개최하고 중소 도시에서는 교양 강좌를 열어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1926년에는 오늘날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하고 기념 행사를 갖도록 하여 한글 보급과 대중화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한글』이라는 잡지를 간행하여 한글 연구를 심화시켰다.

1931년에는 조선어 연구회조선어 학회로 확대 개편되었다. 조선어 학회는 한글 교재를 편찬⋅발간하여 국어 교육에 활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사정」,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만드는 등 우리말에 대한 연구와 정리, 보급을 계속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조선어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조선어 학회는 『우리말 큰사전』의 편찬 작업을 거의 완성한 단계에서 일제가 조선어 학회 관계자들을 일제히 검거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즉, 일제는 조선어 학회와 이에 관계된 인사들이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한다고 하여 이들을 구속하고, 치안 유지법의 내란죄를 적용하여 함흥 검사국에 송치하였다. 이 때 체포된 인사들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이들 중 이윤재, 한징은 옥사하고, 11명은 실형을 언도받았다. 이를 조선어 학회 사건이라고 한다(1942). 이로 인해 조선어 학회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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