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근대사회 운동과 민족 문화의 발전

브나로드 운동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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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32년 『동아일보』에 실린 브나로드 운동 선전 포스터이다.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사가 1931년부터 1934년까지 4회에 걸쳐 문맹 퇴치 운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농촌 계몽 운동이다. 1회부터 3회까지는 ‘브나로드 운동’으로 부르다가 4회 때는 ‘계몽 운동’이라고 하였다. ‘브나로드(v narod)’는 러시아 말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다.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계몽 운동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농촌 공동체를 토대로 러시아가 곧바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인과 학생들은 농민들 사이로 파고들어 그들을 교육하고 일깨워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나로드니키(Narodnik, 러시아어: народники)라고 불렸으며, 브나로드는 바로 나로드니키들의 대표적인 슬로건인 ‘민중 속으로 들어감(khozhdeniye v narod, 러시아어: хождение в народ)’에서 유래된 말이었다.

3⋅1 운동 이후 민족 지도자들은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가 한글을 보급하여 민족 정신을 고양하는 일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한글 보급 운동, 이른바 문맹 퇴치 운동이 시작되었다. 먼저 문자 보급 운동에 나선 것은 조선일보였다. 1929년 조선일보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를 내걸고,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학생들과 함께 문자 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1935년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으나, 『한글 원본』이라는 교재 10만 부를 발행하여 보급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1931년부터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고등보통학교 4⋅5학년 학생으로 조직된 학생 계몽대, 전문학교 이상 학생으로 조직된 학생 강연대, 고향 통신⋅생활 수기 등을 써서 신문사에 보내는 학생 기자대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조선어 학회의 후원을 받아 전국 주요 도시에서 조선어 강습회를 개최하였는데, 제1회 때 37개 지역, 제2회 때 46개 지역, 제3회 때 40개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그 규모가 꽤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사는 한글 교육을 위해 『한글공부』라는 책도 발행하였다. 그런데 브나로드 운동은 한글 교육에만 한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글 외에도 야학을 통해 음악이나 연극 등도 지도하면서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 브나로드 운동이 펼쳐진 4년 동안에 참여한 학생들은 5,700여 명이나 되었고, 이들은 숙식을 비롯한 거의 모든 비용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헌식적으로 활동하였다. 이 운동은 조선일보와 만찬가지로 1935년에 조선 총독부에 의해 금지당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학생들은 비밀 결사 등을 만들어 농촌 계몽 운동을 계속 이어 나갔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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