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현대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해방 직후 한반도로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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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8⋅15 광복 직후 남과 북에 진주했던 소련군과 미군의 모습이다. 첫 번째 사진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이고, 두 번째 사진은 군용 지프차를 타고 남한에 진주하고 있는 미군들의 모습이다. 세 번째 사진은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들이고, 네 번째 사진은 소련군 장교와 미국 종군기자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다. 다섯 번째 사진에는 미군 지프차 주변에 모여 구경하는 조선의 어린이들과 이를 촬영하는 미군 종군기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45년 2월 11일, 연합국 수뇌부들인 미국의 플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9~1953)⋅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이 얄타에서 회담을 진행하였다. 얄타회담은 기본적으로 전후 유럽의 청사진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이곳에서 소련의 참전이 결정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국가의 군대가 진주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후 미국은 군사작전 편의상 ‘38선 분할 점령안’을 전격적으로 소련에 제안하였고 소련은 이를 수락하였다. 이렇게 38도선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소련군과 미군의 한반도 진주 분계선으로 구획되었다. 1945년 8월 26일 소련군은 공식적으로 평양에 진주하였고, 9월 8일 미군은 공식적으로 인천에 상륙하여 그 다음 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이후 북한에는 소군정이, 남한에는 미군정이 각각 수립되었다. 이는 결국 한반도를 냉전 대립의 격전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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