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현대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 지지 집회

※ 가운데 사진을 클릭하시면 이미지 슬라이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은 1946년 1월 3일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좌익 세력의 민족 통일 자주 독립 시민 대회의 모습이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을 절대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보인다.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한반도의 정부 수립 방안이 주요 의결 사항으로 상정되었다. 한반도에 대한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의결 사항이 일부 국내 언론을 통해 전문이 아닌 신탁 통치에 대한 내용만이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써 국내 정치세력 사이에서는 급속하게 ‘신탁’과 ‘반탁’이라는 입장 차이가 불거지게 되었다. 김구(金九, 1876~1949)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측은 곧바로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조직하여 대대적인 반탁 운동에 돌입하였다.

좌익은 초기에는 신탁 통치 방침에 대해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1946년 1월 2일 조선 공산당 당수 박헌영이 평양에서 돌아오면서 조선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 계열은 모스크바 3상 회의 결정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한편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조선 인민당 계열은 3상 회의 결정이 통일된 임시 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국제적 합의이므로 이를 지지하되, 신탁 통치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 뒤 우익은 비상 국민 회의를 거쳐 남조선 대한 국민 대표 민주 의원이라는 우익 조직으로, 좌익은 민주주의 민족 전선이라는 좌익 조직으로 결집하여 국내 정치세력은 국가 수립의 방안을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