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현대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유신 헌법 공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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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1972년 12월 27일 국회에서 진행된 유신 헌법 공포식 현장을 촬영한 것으로 김종필(金鍾泌, 1926~) 국무총리가 발표 단상 위에서 유신 헌법을 공포하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투표 현장을,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진은 1972년 12월 23일 진행된 통일 주체 국민 회의 개회식 모습이다. 네 번째 사진의 왼쪽에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 진행 당시의 식순이 적혀있는데 대통령 선거, 운영위원 지정, 기타 순으로 회의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 사진은 1974년 1월 8일 박정희 정부가 선포한 긴급 조치 1호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신문 기사이다. 여섯번째 사진은 1975년 5월 13일 박정희 정부가 선포한 긴급 조치 9호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동아일보의 기사이다. 마지막 사진은 긴급 조치 1호 위반으로 비상 고등 군사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오른쪽에 장준하(張俊河, 1918~1975), 그 바로 옆에 백기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선 개헌으로 재집권한 박정희(朴正熙, 1917~1979)는 대내외적인 위기를 맞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제7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 선거라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제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획득하였다. 경제 성장과 함께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사회 주체들의 권리 의식이 신장되어 노동 운동과 학생 운동이 성장하였다. 국외에서는 냉전체제가 이완됨에 따라 반공 통치 이데올로기가 흔들리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권위주의 질서를 더욱 강화하여 이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1971년 12월 6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였으며, 1972년에는 ‘10월 유신’을 선포하였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국가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신 헌법’이 국민 투표로 확정되었다.

1972년 12월 27일 유신 헌법 공포식이 진행되었다. 유신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출마 제한 횟수를 없앴다.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제를 채택하였다. 또한 대통령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의장이 되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추천할 수 있으며 국회 해산권도 행사할 수 있는 초법적인 권한을 가졌다. 아울러 대통령은 필요 시 자신의 권한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긴급 조치권’도 행사할 수 있었다.

유신 헌법의 ‘긴급 조치권’은 역대 대한민국 헌법 가운데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위임한 것이었다.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긴급 조치권이 발동되면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잠정적으로 정지”될 수 있었다. 긴급 조치 1호는 1974년 1월 8일 선포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총 9차례의 긴급 조치권을 발동하였다. 긴급 조치 9호는 해제될 때까지 4년간 800여 명의 구속자를 낳았다. 2010년 12월 대법원은 "긴급 조치 1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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