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주제별현대경제 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

미국의 식량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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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1955년 6월 25일, 미국 공보원에서 발행한 포스터이다. 남한에 대한 미국의 식량 원조를 선전하는 것으로 “미국으로부터 한국민에게 지난 미곡 추수 이래 지금까지 800만 석의 양곡”이 입하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원조 식량을 실은 지프차이고, 세 번째 사진은 1954년 미국 천주교에서 보내온 구호 물자를 스페루만 대주교로부터 인수하여 각 단체에 배분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사진은 1959년 국제 연합 한국 재건단(UNKRA)이 구호 물자를 전달하는 모습이다.

6⋅25 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국토가 황폐화되어 남한의 경우 생산력이 1949년 대비 42%가 감소하였고, 공장 건물의 46%가 파괴되었다. 또한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과다 발행되었던 화폐는 결국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켜 남한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통화 개혁, 경제 안정화 15원칙의 확립 등 다양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피해와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정부는 전후 복구 사업비의 대부분을 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중에는 미국의 경제 원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원조들이 대부분 식량을 비롯한 소비재 위주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미국의 잉여 농산물 원조는 심각한 식량난을 완화시켰지만, 국내 곡물 가격을 크게 하락시켰다. 또한 정부가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저곡가 정책을 유지하여, 농촌 지역은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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