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책 이야기
매천야록(梅泉野錄)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관보

한국이 일본에 강제 병탄되다.

지리산 자락의 외진 시골에서 나라가 망하는 상황을 지켜 본 어느 선비는 죽음을 결심하고 유언을 남겼다.

吾無可死之義 / 나는 반드시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但國家養士五百年 / 다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인데 亡國之日 / 나라 멸망하는 날 無一人死難者 /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이가 없다면 寧不痛哉 / 어찌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

망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떳떳한 죽음을 택한 조선의 지식인

매천 황현(1855~1910)

그가 남긴 시대의 기록

매천야록

매천(梅泉) 황현(黃玹) 명문가 후손도 유명한 스승을 둔 적도 관리를 지낸 경험도 없는 선비

그러나 당대의 대유학자 기정진(奇正鎭)이 인정한 시문(詩文)의 천재

그는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대한제국 시기 3대 문장가로 불렸다.

매천집을 발간한 김택영이 바라본 황현

(그는) 바르고 강직해 악한 사람을 원수처럼 미워했다.

옛 글을 읽다가 충신·지사가 어려움을 겪으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매천집』 「본전」

조선의 개항(1879년) 운요호(雲楊號) 사건과 강화도 조약

청일전쟁(1894년) 청과 일본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

을미사변(1895년)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

을사늑약(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

의병운동 일제의 침탈에 항거

황현은 그가 보고 들은 당대의 격변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梅泉 매천 황현의 호 野錄 야록 재야 선비의 개인적 기록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기록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후 명성황후를 염(殮)하는 광경

(이 이야기는 정만조로부터 들었는데, 그가) 궁내부 관리로 그 일에 참여하여 직접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1905년 의병장 최익현 체포 상황

구례의 상인 강모(姜某)가……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구속될 때의 상황을 목격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말해준 것이다.

1907년 이완용 내각에 대한 기록

이완용은 아들 항구와 조카 명구를 시종에… 앉혔다.

시종 박성빈 등 47인은 모두 그와 가까운 문객이었다. 사람들은 이에 가족정부라고 불렀다.”

생생하고 촘촘하게 기록하다

청일전쟁에 대하여

청국과 일본 사이에 오고간 공문 내용을 토대로 1894년 청일전쟁의 경과를 시기별로 자세히 기술 이후 일제의 무력침탈과정도 생생하게 소개

1905년 을사늑약에 대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무력을 동원한 협박

대신들의 우유부단한 태도

‘을사오적’의 일제 협력 등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

지배층을 가차 없이 비판하다

고종에 대하여 고종을 비판한 안종덕의 상소를 인용하며

(안종덕은)임금이 청렴하지도, 근면하지도, 공정하지도, 미덥지도 못한 과오를 공격하였다.

명성황후에 대하여

기민하고 권모술수가 많았는데, 정치 관여 20년에 점차 망국에 이르게 했다.

흥선대원군에 대하여

“사치와 교만에 빠져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었던 것이 장동(壯洞) 김씨에 비교하여 오히려 더한 것이었다.”

의병운동에 대해 풍부하게 기록하다.

의병운동에 대하여 1908년 1월부터 1910년 6월까지 매월 전국 의병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정리

주요 의병장의 활약상과 체포·투옥·순국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

일제의 호남의병 탄압

왜군이 길을 나누어 호남의병을 수색하였다. 사방에서 둘러싸 그물 치듯 펼치고 순사를 파견하여 집집마다 빗질하듯 뒤져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곧 살육을 저질렀다.

황현 책을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유언 후손들이 부본 몇 부를 제작하였지만 극비에 붙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음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그 사료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간행함으로써 세상에 공개된 『매천야록』

순국을 선택한 유교 지식인이 남긴 개항 전후 조선과 대한제국 백서

매천야록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