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조선시대 회화

길게 펼쳐진 산세를 표현한 이 그림

안평대군의 꿈을 형상화한

몽유도원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안견

안견과 같은 이들을 도화서의 화원이라 했다.

붓으로 조선역사를 그리다~조선회화

몽유도원도는 1447년 4월 20일 안평대군의 상서로운 꿈에서 시작합니다.

가깝게 지냈던 박팽년, 최항, 신숙주 등과 꿈 속 여행을 하는 꿈을 꾼 안평대군은

이 꿈이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도화서의 화원 안견을 부릅니다.

1447년 4월 20일 꿈을 꾼 안평대군

박팽년과 말을 타고 가다 산관야복을 한 인물에게 도원의 길을 안내받은 안평대군

도원에 도착하니 신숙주, 최항이 있어 그들과 시를 지으며 노니는 꿈

범상치 않은 꿈임을 직시한 안평대군은 도화서 화원인 안견을 불러 꿈의 내용대로 그림을 그릴 것을 명 내리다.

안견이 3일 만에 완성한 그림

몽유도원도

애석하게도 대표적인 산수화로 꼽히는 몽유도원도는 현재 국내에 없습니다.

일본 나라 현의 덴리 대학 중앙 도서관에 소장중인데요.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관료조직 도화서를 설치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화가를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고려에도 비슷한 조직인 도화원이 있었습니다.

도화원

고려시대 중앙관청으로서 도화원이 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서경에는 지방관청의 하나로 도화원이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문집에 보이는 화국도 도화원의 별칭으로 추정한다.

도화서

도화서의 화원은 서책의 인찰,  

어진 및 공신들의 초상 등 국가와 왕실에 소요되는 특별한 목적의 그림을 제작했다.

하지만 도화서 화원의 실질적인 처우 등은 미약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원(畫員)의 정원(定員)이 40명이온데, 회화(繪畫)에 소질이 있는 자가 직위를 받으려고 부지런히 업(業)을 익혀서 1년 걸러 취재(取才)에 응하여 품수에 따라 직위를 받사오나, 나이 30이 안되어 거관(去官)하게 됩니다.
(중략)
또 그림을 배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어서 10년 가까이 익혀야만 비로소
공을 이룰 수 있사오니, 비옵건대 사역원(司譯院)·전의감(典醫監)의 생도(生徒)의 예에 따라, 액수(額數)에 구애됨이 없이 입속시켜 전습(傳習)하도록 하소서.
[『세종실록』권 46, 11(1429) 11월 23일(을축)]
- 세종대 예조에서 건의한 화원의 글

지금도 강아지나 고양이 등을 그린 캐릭터 상품이 많이 팔리고 있죠?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조선시대에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영모화

화려하게 수를 놓은 비단 장식을 한 횃대 위에 앉아 있는 매

횃대의 금색 용머리 장신구는 왕실인사임을 알게 한다.

이 그림은 종실화가 이암의 〈가응도〉

새와 짐승, 꽃 등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인 영모화

영모화의 대표적 종실화가 이암

이암의 또 다른 작품은 〈모견도〉

〈모견도〉

163.0×55.5cm(전체), 73.5×42.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계회도

사림파들의 진출이 활발해진 성종시대

낭관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가면서 모임들이 성행

제목과 그림, 참석자의 명단을 적은 좌목으로 이루어진 계축 형식의 그림을 계회도라 칭했다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

1531년 김인후 등의 7인이 그린 대표적인 계회도

〈서총대친림사연도〉

- 군신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행사를 자주 열었던 명종

- 궁중행사도의 모태가 된 작품

〈서총대친림사연도(瑞葱臺親臨賜宴圖)〉, 1564년 (1560년 9월 행사), 견본채색, 122×123.8, 국립중앙박물관

〈주문공무이구곡도〉

- 명종말년 성리학을 심화시킨 이황과 사림파들이 감상하던 주자의 은거지이자 학문적 토대였던  무이구곡을 그린 작품

- 이담은 무이구곡도 한 본을 모사해서 이황에게 전달했고 지금 전해지는 그림이 이 작품으로 추정

〈주문공무이구곡도(朱文公武夷九曲圖)〉, 1565년경, 지본담색, 34.7×587.5, 영남대학교박물관

〈시주도〉

- 선조대 명문장가인 최립의 글이 담긴 이 작품은 종실 화가 이경윤이 그린 것으로 추정

〈시주도(詩酒圖)〉, 『산수인물첩』 제1엽, 저본수묵, 23.3×22.5, 호림미술관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

- 일본과의 전쟁을 겪은 17세기 초반

- 효행을 실천하는 수연을 의미 있는 사대부가의 행사로 기념하는 풍조

- 효사상과 통치체제를 정비하고자 했던 조선 지배층의 분위기와 연결

- 이거의 노모가 102세가 된 1605년 한준겸의 제의로 70세 이상 노모를 모신 13인이 주최한 경수연을 그린 그림이 이 작품

『선묘조제재경수연도첩(宣廟朝諸宰慶壽宴圖帖)』, 1605년, 서울역사박물관

〈화개현구장도〉

- 유학자의 처소를 그린 그림은 인품이 묻어나는 영정과 같은 의미로 인식

- 조선중기 지식인들은 처소 그림으로 영정을 대신하기도 함

- 성현이었던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정여창의 옛 별장 악양정의 기록을 토대로 그린 작품

이징(李澄, 1581-1674 이후),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1643년, 견본담채, 89×56, 국립중앙박물관

인조반정 이래 서인이 정계와 학계를 주도하면서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주목해야 할 삼형제가 있습니다.

장동 김씨 집안의 김수증, 김수흥, 김수항입니다.

김수증

조선 지식인의 은거지를 구곡도의 형식으로 그리게 한 김수증

곡운에 마련한 자신의 별서를 떠나 서울로 가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1682년 평양화사 조세걸을 불러 그리게 한 〈곡운구곡도〉

김수항

1664년 함경도 도과의 시관으로 파견된 김수항

도화서 화원 한시각을 대동하여 북새선은도와 북관수창록을 제작

김수흥

1667년 호조판사였던 김수흥은 현종의 온양온천 행차를 기념한 계병을 제작했다.

명승명소도

장동김씨 집안의 후원을 받았던 화가 정선

1711-1712년 금강산을 다녀와 화첩을 제작

정선의 그림과 이병연의 시를 합한 해악전신첩

정선의 그림은 조선 최고의 명승명소도로 꼽힌다.

문방도

18세기 후반

문방용품과 서책을 배경으로 한 서재초상과

서실의 물품을 그린 문방도가 성행

화원에게 규장각신들의 집에 가서 초상, 집과 들창, 책상, 벼루 등을 그려오게 한 정조

중국 청에서 들어 온 각종 골동품, 서책의 수장 풍조와 관련된 것으로 봄

한정래(韓廷來), 〈임매(任邁, 1711-1779)상〉, 1777년, 견본채색, 65×46.7, 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姜世晃), 〈청공도(淸供圖)〉, 견본담채, 39.5×23.3,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18세기에 들어와, 그림은 더 이상 부유한 사대부가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조 3년, 광통교에서 그림을 파는 장면이 속화로 그려졌고,

김홍도와 같은 도화서 화원들의 그림이 서화 가게를 통해 판매되었습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와 그림

1803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물러가고 순조가 직접 정사를 돌보며 안동김문의 세도정치가 시작.

김조순 등의 안동김문 일족은 송시열과 김수항 형제들이 치열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제작을 시도하였던 고산구곡도를 새롭게 모사

1803년 가을에 제작된 〈고산구곡시화병〉 총 12폭으로 구성

당대 대표적 화가인 김홍도, 김이혁 등 10명의 화원이 참여

각 폭의 글씨는 안동김문 일족만이 쓰도록 했다.

그림에 나타난 조선의 역사

왕실 관련 그림이 유행

건국초기 국가적 필요에 의한 도화서 양성

조선 중기

국왕의 감상을 위한 영모화조화 낭관(郎官) 계회도 유행

사림파 진출과 활발했던 그들의 활동을 보여준다.

16세기 을사사화

군신과의 관계가 중요했던 시기로 유학자의 집안풍경을 담은 그림이 유행

임진왜란 이후 효행도가 유행

유교적 질서 회복을 위한 사회적 풍조를 보여준다

인조반정 이후 세력을 잡으려 노력했던 장동 김씨

회화를 적극 후원하며 유람도를 통해 양반들의 삶을 반영한다

18세기 골동품과 서책을 배경으로 한 영정을 그리는 풍조가 성행

중인층의 성장과 청나라로부터 골동품 및 서책을 가져온 실류를 반영

당대의 문화풍조 정치와 사회상을 반영한 조선회화

회화는 당시의 역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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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자문 : 조규희

시나리오 구성 : 안현진, 김민상

성우 : 오수경

MC : 주혜빈, 황바울

삽화 : 이광일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 한성백제박물관, E-뮤지엄

연출 : 김형우, 이혁로, 이연식

기획 제작 : 아리랑TV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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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Chin-Sung, “The Lost Horizon: Some Thoughts on the Origins of An Gyeon's Dream Journey to the Peach Blossom Land,” in Moving Signs and Shifting Discourses: Text and Image Relations in East Asian Art, International Conference, June 26–28, 2013, Freie Universität Berlin. (forthcoming)

〈조규희〉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