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음악

희노애락(喜怒哀樂)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

음악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음악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대중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나라를 다스리는(治國)의 도(道), 음악

고대에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고대엔 음악을 정치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음악을 알려면 음악을 표현한 악기를 알아야 겠죠!

먼저 삼국시대의 악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삼국시대의 악기

① 가야금

지금까지 이어져 온 악기

‘가야(伽倻)의 금(琴)’이라는 뜻의 남쪽 가야의

가야금

가야금의 탄생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의 쟁을 본떠서 만들었다.”라고 기록

- 『삼국사기』 권32 〈악지〉

하지만!!

중국의 악기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은 단지 기록상의 이야기

이미 3세기에 “고”라는 악기가 존재

가실왕의 명을 받아 열두 곡을 만든 우륵

낙동강 유역의 토속성 짙은 음악

조국 가야국이 어려워지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로 망명

결국 신라의 대악이 된 우륵의 음악이 가야금의 도를 전파한 곳은 현재 충주 탄금대(彈琴臺)

가야금은 19세기 후반에 가서 ‘산조(散調)’라는 음악이 만들어지면서 모양이 개량 가야국에서 발생

신라 땅에서 발달한 가야금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문고, 비파, 대금, 중금, 소금과 함께 삼현삼죽(三絃三竹)악기로 자리잡음

② 거문고

북쪽 고구려 땅에서 발원한 악기 묵직한 북방 민족의 기상을 담은 거문고

거문고는 고구려의 제 2상 벼슬을 한 왕산악에 의해 만들어짐

거문고는 중국의 칠현금과는 다른 계열의 악기로 왕산악이 개량하여 만듦

고구려의 ‘금’이라는 의미의 거문고라는 이름이 붙여짐

신라로 전해진 거문고 옥보고는 거문고 음악 30곡을 작곡 이때 만들어진 음악 187곡

일곱 줄부터 열 줄까지, 줄 수가 다양한 거문고도 새롭게 탄생

 

고려시대의 음악

① 연등회

등불을 밝혀 부처에게 복을 비는 불교 행사

중국에서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로 전해진

연등회

산대(山臺)라는 무대세트에서 공연한 연등회는 나라의 축제

고려시대 때 정월 보름날 혹은 한식날, 4월 초파일 등에 행해짐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행사

② 팔관회

인도 → /중국→/신라→/고려

해진 행사 / 팔관회

추수감사제의 성격, 신라의 화랑적 전통,고구려의 조상제사적 특징까지 포함한 팔관회는 고려의 연례적인 행사

 

고려의 향악, 당악, 아악

① 향악

나라의 제사를 올릴 때 아악과 함께 연주

일부 음악은 궁중 잔치에서 당악과 함께 연주됨

② 당악

고려의 당악 중 중국에 전래된 5종의 당악정재인 헌선도, 수연장,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 주목

고려사 〈악지〉에 43편이 전해진 것으로 기록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보허자〉, 〈낙양춘〉 단 두곡

③ 아악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에서 제사음악이 전해짐.

이는 대성아악으로 1116년(예종 11년) 유입.

고려시대 유입된 아악은 음 하나에 가사 하나를 붙여 연주

노랫말의 전달을 정확하게 한 일자일음식 선율.

 

자하동

집은 송산의 자하동에 있는데 家在松山紫霞洞

구름과 안개 서로 맞닿아 있는 중화당 雲烟相接中和堂

오늘 원로들 모였다는 소식 기뻐서 喜聞今日耆英會

와서 한 잔의 장생주를 올리네 來獻一杯延壽漿

- 중략 -

자하동의 중화당 紫霞洞中和堂

음악소리 가운데 온 좌석 좋은 손님들은 管絃聲裏滿座佳賓

모두가 삼한의 국로들 皆是三韓國老

백발에는 꽃을 꽂고 白髮戴花

손에는 금 술잔 잡아 서로 술을 권하니 手把金觴相勸酒

봉래산 선인도 풍류가 이보다 못하리. 蓬萊仙人却是未風流

〈고려사〉 中 자하동(紫霞洞)

지금 본 글은 고려시대의 작곡가 겸 음악후원자인

채홍철의 자하동이란 곡의 노랫말입니다.

고려시대 음악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채홍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시대의 작곡가 채홍철

고려 원종 태어난 채홍철은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의 시대를 살며 관직을 이어감

만년엔 벼슬을 버리고 책과 거문고를 즐기며 은거생활

채홍철과 음악인들이 준비한 당악으로 당시 국가행사나 귀족들의 행사에서 연주된 태평년

송나라에서 들여온 노랫말인 ‘사’(詞)

대곡의 하나로 채홍철이 직접 부름.

고려시대에 알려진 인물이 남아 있지 않아 채홍철의 노랫말과 음악은 고대음악사에 커다란 가치가 있음.

 

정과정곡의 작가, 정서

1146년 인종의 아들 의종이 즉위

의종의 총애를 받은 정서

그런 정서를 모함한 신하들

결국 동래땅으로 유배당한 정서

[정서의 정과정곡]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며 다니니

산 접동새와 나는 비슷합니다.

진심인지 진심이 아니신지,

아으

- 중략-

님이여 나를 벌써 잊으셨나이까

아, 님이시여

옛 정을 생각하시어 사랑하여주세요.

흡사 연인을 향한 사랑노래처럼 보이나 유배당한 정서가 의종이 다시 자신을 궁으로 불러주기를 바라며 부른 노래로 제목은 <정과정곡>입니다.

〈정과정곡〉은 〈삼진작〉이라고도 불리며 조선 성종대의 악서 〈악학궤범〉에도 수록됩니다.

조선시대의 음악

조선음악은 조선건국과 연관이 중심에 정도전이 있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 “인(仁)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자리를 인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

조선 국가전례의 틀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

“정치하는 요체가 곧 예악(禮樂)에 있다”

예악을 정하여 법칙을 정함으로 국가를 질서정연하게 하고 정치가 안정되도록 하자는 것이 정도전의 주장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예와 악의 정치를 강조 오례의 틀을 바탕으로 의례를 행함

예(禮) : 행실을 절도 있게 함

악(樂) : 마음을 온화하게 함

예악(禮樂) : 상호보완적인 관계

예악 / 정치 : 예와 악이 서로의 균형을 이루며 실행한 이념적 가치로 조선초기의 정치사상

 

조선의 국가전례

국가의 공식적인 의례 / 국가전례

국가전례는 오례로 진행

길례 : 천.지.인에 대한 각종 제사의례의 중심

가례 : 혼례.조회.조하.책봉례.양로연 등의 의례

빈례 : 중국과 이웃나라의 사신맞이와 관련된 의례

군례 : 활쏘기.강무 등의 군사 관련 의례

흉례 : 왕실의 상장례와 관련된 의례

조선의 국가전례는 〈세종실록오례〉, 〈세종실록악보〉, 〈세조실록악보〉, 〈국조오례의〉 기록

예약정치를 바탕으로 한 국가전례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짐

 

조선전기의 음악 - 정간보

세종은 이처럼 음악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왕으로 꼽힙니다.

그 이후에도 세종은 국가음악정비에 노력을 기울입니다.

세종의 음악정비

박연을 중심으로 일정한 음높이를 내는 관인

율관 제작을 명함

좋은 경돌을 이용한 국산 편경을 제작

편종 및 아악기들을 제작할 주종소 설치

아악보를 작업

국가의례를 위한 음악인 <여민락(與民樂)>을 만듦

세종은 직접 음악을 연주하거나 만들었던 왕

회례악(會禮樂)의 용도로 〈보태평〉과 〈정대업〉을 만들고 이는 조선조 내내 종묘 제사할 때 연주하는 〈종묘제례악〉이 됨

이 모든 것이 세종대에 이루어진 음악사의 업적

 

성종대의 음악

조선 최고의 음악 서적인 〈악학궤범〉

1493년(성종 24년) 예조판서 성현이 성종의 명을 받아 만든 음악서적으로 조선 궁중음악의 전체적인 상황을 기록한 책

성종은 오례서와 함께 법전편찬작업을 함께 제작

“모든 의례는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따른다”고 기록

- 경국대전 中

조선시대 국가의례는 법전의 기록과 유사한 성격

성종대는 국가의례서인 〈국조오례의〉 법전인 〈경국대전〉 악서인 〈악학궤범〉을 차례로 편찬하여 문화정비가 잘 이루어진 시기

세종, 성종 이후에도 국가음악을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어집니다.

특히 영. 정조 시대는 문화융성기가 불리며 그야말로 음악사의 부흥이 있던 시대입니다.

조선 후기의 음악 - 영조

영조는 〈국조오례의〉 〈동국문헌비고〉

〈악고〉 〈속대전〉 등의 악서, 법전을 편찬 음악을 정비, 부흥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펼쳤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후 음악사를 재건하기엔 악기도, 악사도 없었던 시기를 거친다.

하지만, 문화융성을 위한 영조의 업적 뒤엔 이연덕이란 인물이 있었다.

① 이연덕(李延德, 1682~1750)

영조때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삼아 1742년(영조 18) 장악원정으로 임명

②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한 영조는 이연덕을 악기 제작을 하는 감독으로 명함

③ 관리를 북경에 보내 생황(笙簧) 만드는 법을 배워오도록 한 영조

이연덕은 아악기를 만들고 아악을 정리하는 등의 여러 성과를 이룸

 

조선 후기의 음악 - 정조

의례와 음악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왕 / 정조

〈정조의 업적〉

① 정조 집권 초반, 규장각을 설치하면서 아악기인 종, 경, 금, 슬을 특별히 규장각에 하사한 것도 악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상징적 의미

② 악을 잘 아는 신하, 즉 지악지신(知樂之臣)을 양성하기 위해 시교(詩敎)와 악교(樂敎)를 강조

정조에게 음악이란 ‘즐기는 것’ 이 아니라 ‘닦는 것’으로 음악을 통해 덕이 갖춰진 악(樂)을 아는 인물 배출에 힘을 쏟았다

 

조선 후기의 음악 - 민간의 음악, 가곡과 줄풍류 음악

왕실이 아닌 민간에서는 중인신분을 중심으로 가곡과 같은 성악음악

문인, 율객을 중심으로 줄풍류 음악 성행

조선시대 문인들 사이에 현악기 거문고 연주가 인기

문인들을 중심으로 거문고로 연주한 음악

〈현악영산회상〉

 

판소리

예술성이 뛰어난 음악장르로 조선 후기

음악사에 등장한 / 판소리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 ‘판’

노래를 말하는 ‘소리’

소리꾼은 여러 사람의 역할을 하며

음악성, 연기, 다양한 표현능력을 갖춰야 함

판소리의 첫 기록은 유진한의 문집 『만화집(晩華集)』에 「가사춘향가이백구(歌詞春香歌二百句)」

판소리 이론가/ 교육자/음악후원자

판소리의 사설을 집대성한 인물

신재효(1812~1884년)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판소리

남쪽 가야의 가야금

고구려에 탄생한 거문고

고려의 불교행사인 연등회

고려의 추수감사제, 신라의 화랑적 전통

고구려의 조상제사적 특징의 행사 팔관회

예(禮)와 악(樂)의 나라 조선

아악정비, 향악을 만든 세종, 세종대 나온 〈세종실록악보〉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

성종대 편찬된 음악 서적 〈악학궤범〉

아악을 부흥시키고자 노력했던 영조

의례와 음악의 중요성을 깨닫고 규장각 설치, 지악지신(知樂之臣)을 양성한 정조

서민들의 애환, 풍자가 담긴 조선후기의 판소리

우리 조상들의 음악을 기억하는 일은 곧,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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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자문 : 송지원

시나리오 구성 : 안현진, 김민상

성우 : 오수경

MC : 주혜빈, 황바울

삽화 : 이광일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 한성백제박물관, E-뮤지엄

연출 : 김형우, 이혁로, 이연식

기획 제작 : 아리랑TV미디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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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

『國朝五禮儀』

『國朝續五禮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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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