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예로부터 왔던 오랑캐로 마한의 족속이다. 진(晉)나라 말에 구려(駒麗)
고구려
가 요동을 침략해 점유하자 낙랑 또한 요서 진평현(晋平縣)을 가졌다. 진(晉) 이래로 항상 번진(藩鎭)이 되었으니 의희(義熙) 연간(405~418)에는 그 왕 여전(餘腆)이, 송나라 원가(元嘉) 연간(424~453)에는 그 왕 여비(餘毗)가, 제나라 영명(永明) 연간(483~493)에는 그 왕 여태(餘太)가 모두 중국의 관작을 받았다. 양나라 초에 여태를 정동장군(征東將軍)에 제수하였으나 자주 고구려에게 격파되었다. 보통(普通) 2년(521)년 그 왕 여융(餘隆)이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여러 차례 고구려를 물리쳤습니다.”라고 하였다. 도성(都城)을 고마(固麻)라 하였고, 읍(邑)을 이르러 담로(檐魯)
라 하였는데, 중국의 군현에 해당한다. 22개의 담로
가 있어 자제 종족(子弟宗族)을 나누어 그곳에 두었다. 주변에 소국인 반파(叛波)⋅탁(卓)⋅다라(多羅)⋅전라(前羅)⋅사라(斯羅)⋅지미(止迷)⋅마련(麻連)⋅상기문(上己文)⋅하침라(下枕羅) 등이 그에 부속되어 있었다. 언어와 의복은 고(구)려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쪽 다리를 펴지 않는다. 모자를 관이라 부르고, 저고리를 복삼, 바지를 곤이라 한다. 그 나라 말에는 중국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한의 습속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담로(檐魯)' 관련자료
'22개의 담로' 관련자료
「양직공도」 백제국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