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해가(海歌)」를 불렀는데, 가사는 “거북아 거북아 수로(水路)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 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라고 하였다.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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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가(安民歌)는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스런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하실지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물생(物生)들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고 한다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다.”라고 하였다.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노래는 “열치고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시내에 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에서 낭(郎)이 지니신 마음가를 쫓으려 하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 드높아 서리 모를 화판(花判)이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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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處容)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곧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물러났다. 노래에 이르기를,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들도록 노닐다가 집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뺏겼으니 어찌 할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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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月明)은 이에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읊었다. 그 가사는 이러하다. “오늘 이에 산화가[散花]를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이 명하시니 미륵좌주(彌勒座主)를 모시어라.”라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散花歌)」를 불러, 청운(靑雲)에 한 조각 꽃을 뿌려 보낸다. 은중한 곧은 마음이 시키는 바이니, 멀리 도솔천[兜率]의 부처님 맞으시라”라고 하였다. 지금 세속에서는 이것을 「산화가」라고 하나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화가」는 따로 있는데, 글이 번다하여 싣지 않는다. ……(중략)……
월명은 또한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하여 재(齋)를 올리고 향가(鄕歌)를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문득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지전(紙錢)이 날려 서쪽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생사의 길은 예 있으매 저어하고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인 양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져.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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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융천(融天) 스님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별의 괴변이 곧 멸하고 일본 군병이 제 나라로 돌아가 도리어 복된 경사가 되었다. 대왕(大王)은 기뻐하여 낭도들을 풍악(楓岳)에 보내 놀게 하였다. 그 노래는 “옛날 동쪽 물가의 건달바(乾達婆)의 놀았던 성을 바라보고 ‘왜군도 왔다’고 홰를 사룬 변방의 숲이라. 세 화랑의 산행(山行) 감을 듣고 달도 밝게 불을 켜는 터에 길 쓸 별 바라보고 ‘혜성이여’ 사뢰는 사람이 있다. 아으, 달은 저 아래로 떠가고 있더라. 어와, 그 무슨 혜성이 있을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