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神宗)
때 기홍수(奇洪壽, 1148~1209)와 차약송(車若松, ?~1204)이 같이 평장사(平章事)
를 설치하여 시중(侍中)
'신종(神宗)' 관련자료
중서문하성에 속한 정2품 벼슬
가 되어 중서성(中書省)에 합좌(合坐)하였다. 차약송이 기홍수에게 공작(孔雀)이 잘 있느냐고 묻자, 기홍수도 모란(牧丹)을 기르는 방법을 물어,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었다. 국가가 도병마사(都兵馬使)
'도병마사(都兵馬使)' 관련자료
중서문하성의 최고 관직으로 종1품 벼슬
⋅평장사(平章事)⋅참지정사(參知政事)
중서문하성에 속한 관직으로 종2품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문하성의 종2품 관직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중서문하성에 속한 종2품 벼슬
로 판사(判事)를 삼고, 판추밀(判樞密)
추밀원의 으뜸 벼슬로 종2품
이하로 사(使)를 삼아, 큰일이 있을 때 회의(會議)하였기 때문에 합좌(合坐)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한 해에 혹 한 번 모이기도 하고 여러 해 동안 모이지 않기도 하였다. 그 뒤에 도평의사(都評議使)로 고쳤고 혹은 식목도감사(式目都監使)라 일컫기도 하였다. 원나라에 사대(事大)한 이후 급한 일이 많아 첨의(僉議)⋅밀직(密直)이 항상 합좌하였다. 합좌하는 예의는 먼저 온 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으로 향하여 서고 뒤에 온 자가 그 위치에 따라 한 줄로 서서 읍(揖)한 다음, 같이 좌석 앞에 이르러 남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향하여 엎드려서 서로 안부를 묻는다. 다시 자리 앞에 이르러 남쪽으로 향하여 두 번 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향하여 한 줄로 서서 읍한 뒤에 앉는다. 지첨의(知僉議) 이상이 도착하면 밀직(密直)은 다 뜰에 내려가서 북쪽을 상석(上席)으로 하고 동쪽을 향해 서서 머리를 숙이고 손을 낮게 내린다. 첨의는 그 위쪽에 서서 두 줄로 읍하고 마루에 올라가 절하고, 앞의 예의와 같이 읍하고 앉는다. 첨의 한 사람이 출석하여 같이 앉게 된 뒤에는 다시 뜰에 내려가서 영접하는 예의가 없다. 다만 수상(首相)이 오면 아상(亞相) 이하가 다 뜰에 내려가서 북쪽을 상석(上席)으로 삼고 동쪽을 향하여 서서 영접하고 수상은 서쪽으로 향하여 마주 읍한다. 그런 뒤에 마루에 올라가 절하고 읍하는 것을 또한 앞의 예의와 같이 한다.
수상이 혼자 동쪽에 앉는 것을 곡좌(曲坐)라 한다. 아상 이하는 한 줄로 앉는데 수상이 정승(政丞)
여기에서 정승이라고 한 것은 옛날의 시중(侍中)이다
이 아니면, 곡좌도 하지 않고 뜰에 내려가서 영접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녹사(錄事)
각급 관아에 속하여 기록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하급 실무직 벼슬
가 회의 사항을 앞에 가서 보고하면 각자 자기 생각대로 그 가부를 말한다. 녹사가 그 사이를 왕래하면서 그 의논이 일치하게 한 뒤에 시행하니 이를 의합(議合)이라 한다. 그 나머지는 단정히 앉아 말하지 아니하여 엄숙한 모습이 공경스럽고 두렵게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첨의와 밀직을 증원하고 또 각각 상의(商議)하는 관원이 있으니, 판삼사사(判三司事
判三司事 : 삼사(三司)
의 으뜸 벼슬로 종1품
는 아상 윗자리에 앉고 좌사(左使)
'삼사(三司)' 관련자료
삼사에 속한 정3품 벼슬
ㆍ우사(右使)는 평리(評理)
고려 말기 도첨의사사ㆍ도첨의부ㆍ문하부에 둔 종2품 벼슬
의 윗자리와 아랫자리에 앉으며, 여럿이 떼 지어 드나들고 이따금 큰 소리로 떠들고 웃으면서, 부부간의 사사로운 일이나 시정의 쌀값ㆍ소금 값의 이익에 이르기까지 말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위에 말한 기홍수ㆍ차약송이 공작과 모란을 문답한 말과 비교해 볼 때도 또한 시대가 다른 것이다.『익재집』, 『역옹패설』 전집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