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헌(崔忠獻)
이 최충수(崔忠粹)와 함께 봉사(封事)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엎드려 보건대 적신 이의민(李義旼)은 성품이 사납고 잔인하여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아랫사람을 능멸하여 신기(神器)를 흔들려고 했으므로 재앙의 불길이 성하여 백성이 살 수 없었습니다. 신 등이 폐하의 위령을 힘입어 단번에 쓸어버렸으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낡은 것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치를 도모하심에 태조
의 바른 법을 한결같이 따르셔서 중흥의 길을 빛나게 여시기 바랍니다. 이에 삼가 열 가지 일을 조목으로서 아뢰나이다.
'최충헌(崔忠獻)' 관련자료
'태조' 관련자료
옛날에 태조
께서 삼한을 통일하신 후 도읍을 송악군(松嶽郡)에 정하시고 명당(明堂) 자리에 궁궐을 지으셔 자손 군왕(君王)이 만세토록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지난 번 궁실이 불타자 다시 태조
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 궁궐을 지었으니, 모두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하였습니까. 그런데도 그곳을 좋지 않게 여기는 말을 믿으시고는 오랫동안 그곳에 납시지 않으셨으니 어찌 음양(陰陽)에 위배됨이 있는지 알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길일(吉日)에 새로 지은 궁궐로 들어가셔서 천명(天命)을 받드셔야 할 것입니다.
'태조' 관련자료
'태조' 관련자료
우리나라의 관제는 녹봉의 수량으로 계산하는데 잘못된 점이 많고, 간혹 정원을 초과하여 문하부(門下府)와 추밀원
및 여러 관위(官位)를 두어 녹봉으로 주는 미곡이 부족하니 그 폐단이 매우 큽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옛 제도를 좇아 관리의 인원을 줄이고 생략하여 적당한 인원에게만 제수하소서.
'추밀원' 관련자료
선왕(先王)이 토지 제도를 정할 때 공전(公田)을 제외하고는 신민(臣民)에게 차등 있게 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관직에 있는 자가 욕심이 많고 야비하여 공사전(公私田)을 빼앗아 이를 소유하니, 한 집안의 비옥한 토지가 여러 고을에 걸쳐 있으므로 나라의 부세(賦稅)가 줄어들고 군사(軍士)의 몫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담당 관리에게 공문서를 모아 다시 조사하도록 하여 함부로 빼앗은 토지를 모두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소서.
공사전(公私田)의 조부(租賦)는 다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백성이 곤궁하여 먹을 것이 없어지면 어디에서 충분히 거둘 수 있겠습니까. 이속(吏屬)이 혹시 불량하여 오직 이익만을 따라서 움직이면서 백성들을 침탈하여 손해를 입히고, 또 권세가의 노복(奴僕)이 다투어 전조(田租)를 거둬가서 백성이 모두 수군거리며 근심합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어질고 능한 이를 골라 외직(外職)에 임명하시어 권세가들이 백성들의 살림을 무너뜨리지 못하게 하소서.
나라가 사(使)를 나눠 파견하여 양계(兩界)
를 통솔하고 5도(道)
를 살피도록 한 것은 이속(吏屬)의 간사함을 억제하고 백성의 괴로움을 막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여러 도(道)의 안찰사
등이 응당 살펴야 할 일을 살피지 않고, 다만 가렴주구만을 일삼으면서 조정에 바친다는 명목으로 역참의 말을 노역시켜 재물을 옮기며 혹은 사적인 용도로 충당합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각 도의 안찰사
에게 공진(供進)함을 금지시키시고 오직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일에 충실하도록 하게 하소서.
'양계(兩界)' 관련자료
'5도(道)' 관련자료
'안찰사' 관련자료
'안찰사' 관련자료
지금 산중에 있던 한두 명의 승려가 항상 왕궁을 배회하고 궁궐 깊숙한 곳에 들어가도 폐하께서는 불교에 미혹하여 매번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십니다. 승려들이 이미 폐하의 총애를 받으며 자주 청탁을 일삼아 성덕(聖德)을 더럽혔는데도 폐하께서는 내신(內臣)에게 분부하시어 승려들이 삼보(三寶)를 관장하게 하고 백성에게 곡식을 대여하고 이식(利息)
이자
을 취하게 하니 그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승려들을 물리치셔서 궁궐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시고 곡식으로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소서. 요사이 듣건대 군현(郡縣)의 이속이 탐욕을 부리는 자가 많아 염치의 도리가 끊어졌는데도 각 도의 안찰사
는 이를 내버려두고 살피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혹 어질고 청렴한 자가 있어도 안찰사
들이 이를 몰라주어, 악행이 거리낌 없이 행해지고 청렴함은 무익하게 되었으니 경계하고 권장하는 일이 어찌 제대로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양계
도통사와 5도
안찰사
에게 영을 내려 이속의 능력을 조사하여 장계(狀啓)로 상세히 보고하게 한 후 능력이 있는 자는 발탁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징계하소서.
'안찰사' 관련자료
'안찰사' 관련자료
'양계' 관련자료
'5도' 관련자료
'안찰사' 관련자료
지금 조정 신하들은 모두 절약하고 검소하지 않아, 저택을 수리하고 의복과 노리개를 만들어 이를 진귀한 보물로 장식하여 그 기이함을 자랑하니 풍속이 나빠져 망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모든 관료들에게 훈계를 내리셔서 사치를 금하고 검소함을 숭상케 하소서.
태조
께서는 반드시 산천의 순역(順逆)을 살펴 사찰을 세우고 지세에 따라 편안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후대에는 장수와 재상 및 여러 신하들, 불량한 승려 등이 산천의 길흉을 따지지 않고 불우(佛宇)를 세워 원당(願堂)이라 이름 짓고는 지맥을 훼손하니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음양관(陰陽官)에게 검토하도록 하시어 무릇 비보사사(裨補寺社)
'태조' 관련자료
풍수지리에서 지세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 곳을 보완하기 위해 세운 사찰
외에는 바로 없애고 남겨 두지 못하게 하시어 후인들의 본보기가 되지 말게 하소서.
성대(省臺)
어사대의 관리들과 중서문하성의 3품 이하 관원인 낭사(郎舍)를 가리킴. 국왕에 대한 간언을 담당함
의 신하는 나랏일에 대해 말하는 일을 맡기 때문에 혹시 폐하께서 잘못하시는 부분이 있으면 곧 과감하게 간언하여 비록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달갑게 여겨야 할 텐데 지금은 모두 머뭇거리며 상황을 살피며 구차하게 윗사람의 뜻에 영합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적임자를 택하신 뒤 조정에서 직언하도록 하시고 업무를 처리할 때는 논쟁하여 올바로 잡도록 하소서.”
최충헌
이 글을 올리자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최충헌' 관련자료
『고려사』권129, 「열전」42 [반역3] 최충헌
'최충헌'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