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
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하고 유아(儒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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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을 짓는 풍류의 도
를 숭상하여, 특별히 청연각(淸宴閣)을 열고 날마다 학사들과 함께 삼분오전(三墳五典)
복희⋅신농⋅황제의 글을 삼분이라 하고 소호⋅전욱⋅고신⋅요⋅순의 글을 오전이라 함
을 토론하였다. 일찍이 사루(莎樓)에 나아가니 앞에 목작약이 활짝 피어 있었다. 궁중에 입시한 여러 선비에게 명해 각촉(刻燭)
초에 일정한 금을 그어 시간을 재는 것
하고 칠언육운(七言六韻)의 시를 짓게 하였는데, 동궁 요좌(僚佐) 안보린(安寶麟)이 1등이었다. 그 등급을 따라 은혜를 베푸니 더욱 두터웠다. 당시 강일용(康日用) 선생의 시명(詩名)이 천하를 움직였으므로 임금이 마음 속으로 그의 작품을 기다렸다. 강일용이 촛불이 다하려 할 즈음 겨우 1연(聮)을 짓고는 그것을 쓴 종이를 소매에 넣고 어구(御溝)
궁궐에서 흘러나오는 개천
가운데 엎드리니 임금이 어린 환관에게 명하여 그것을 빨리 가져오게 하였다. 그 시에 이르길, “머리 흰 취옹(醉翁)
송나라의 문장가 구양수(歐陽脩, 1007~1072)
은 전각 뒤에서 보고, 눈 밝은 유로(儒老)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
는 난간에 기대었도다”라고 하였다. 고사(故事)를 인용하는 정묘함이 이와 같음을 보고 임금이 감상하면서 탄식하길 “이는 옛사람이 이른바 ‘흰머리의 여인이 꽃과 비녀로 얼굴을 가득 꾸민 것이 서시(西施)
중국 춘추시대의 미녀
가 반쪽 화장한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하고는 위로하고 타일러 보냈다.……(하략)……『파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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