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정사를 닦아 이적(夷狄)을 물리치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어 대일통(大一統)
천자를 중심으로 하나의 질서 아래 천하를 통일함
의 의리를 천하 및 후세에 밝힌 뒤로 혈기가 있는 부류라면 모두 중국은 존중해야 하고 오랑캐(夷狄)는 추하게 여겨야 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자가 또 인륜을 미루어서 생각하고 천리(天理)를 깊이 따져 부끄러움을 씻는 의리를 밝히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데 사람은 그 가운데 위치하였다. 하늘의 도는 음양에서 벗어나지 않고, 땅의 도는 유강(柔剛)에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仁)과 의(義)를 놓아 버리고서는 또한 사람의 도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은 부자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는 군신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이를 삼강(三綱)의 요체요, 오상(五常)의 근본이라 이른다. 인륜은 천리의 지극함이며 천지의 사이에서 벗어나는 바가 없으니,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는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이 덮어 주고 땅이 실어 줌에 무릇 임금과 신하⋅아버지와 아들의 성품이 있는 것은 지극히 통탄해 마지않는 동정(同情)
인간의 보편적인 연민⋅공감
에서 비롯된 것이지, 한 몸의 사사로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기를 ‘이 한 글자, 한 글귀가 혹시라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썩어서 더러운 흙에 빠지고, 사람의 도가 짐승과 같이 되어 구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과 동시에 창업하여 곧 군신(君臣)의 의리를 정하였으니, 소국을 사랑하는 은혜와 충정(忠貞)의 절의가 거의 300년 동안 침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저번에 추악한 오랑캐가 마구 흉악을 부려 온 나라가 함락되어 당당한 예의지국이 온통 비린내로 더럽혀졌으니, 당시의 일을 차마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연달아 갑신년(1644, 인조
22)의 변란을 만나서 황경(皇京)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
는 우리 태조 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
'태조 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 관련자료
'인조' 관련자료
북경(北京)
이 전복되는 바람에 천하에 임금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록 이 오랑캐의 소행이 아니라 하나 시기에 편승하여 악을 마구 부려 우리의 침묘(寢廟)
종묘
를 쓸어 버리고 우리의 황족(皇族)을 섬멸하였으니, 가슴 아픈 일입니다.홍광제(弘光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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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이 함락된 후 남경에 세운 남명(南明)의 첫 황제
에 이르러 남쪽에서 즉위하여 대통(大統)이 존재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비록 빙향(聘享)의 예를 행한 일은 없으나 이는 우리 신종 황제(神宗皇帝)의 혈족인데, 군신(君臣)의 큰 의리를 어찌 멀리 있다고 하여 거리를 두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하늘이 재앙을 계속 내려 역적 오랑캐가 다시 시역(弑逆)
가 이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존재하게 되었고, 백성이 거의 다 없어질 뻔하다가 다시 소생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백성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황제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게 원통해 하는 것이 온 천하에 그 누가 우리와 같겠습니까? 더구나 광해군(光海君)
이 인륜의 도리가 없어서 강홍립(姜弘立)
⋅김경서(金景瑞)로 하여금 전 군사를 오랑캐에 투항케 하여 천하 사람들이 우리더러 다 같이 오랑캐가 된다고 말하게 하였는데, 우리 대행 대왕(大行大王)
을 하여 더러운 오점을 통쾌하게 씻어서 해와 별처럼 밝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한 나라의 백성은 길이 천하 후세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대행 대왕께서 지성으로 명나라를 섬겨 늘 은혜를 입어 언제나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묘년(1627, 인조
5) 이후로 갑자기 북로(北虜)
15) 이후의 일은 절대 신하로서는 차마 말할 바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오랑캐에게 원병을 보내는 일을 앞에서 보아야만 했고 정역(鄭逆)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것
을 자행할 줄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해와 달이 비치고 서리와 이슬이 떨어지는 곳에 사는 천명의 인륜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한 하늘 밑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의리를 가지지 않은 자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신종 황제의 은혜를 힘입어 임진년의 변란에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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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를 지칭함
께서 정의를 내걸고 반정(反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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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나라를 지칭
에게 위협을 당하여 울분을 참고 충절을 나타내지 못하였습니다. 정축년(1637,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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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鄭命壽)
이 항례(抗禮)할 때도 끝내 처단하지 못하였으니, 신하가 한 번 죽는 것이 이처럼 어렵단 말입니까? 아, 선왕(先王)의 성대한 덕의(德義)로써 이런 큰 변란을 만나, 병력은 약하고 장상(將相)은 용렬하여 끝내 황상의 원수를 섬기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항복하여 신하가 된 큰 수치를 씻지 못한 채 오랫동안 울분을 억누르다가 신무(神武)
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하늘이 주신 용맹과 지혜, 위엄과 덕이 이미 드러났으니, 황천(皇天)의 보살핌과 선왕(先王)의 부탁이 필시 있을 것이고 백성의 기원이 바야흐로 그 일에 간절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에 조금이라도 미진하다면 비록 제왕의 위엄을 누린다 하더라도 어찌 낙이 되겠습니까?
뛰어난 무용(武勇)
를 끝내 펴 보지 못하셨으니, 수명을 오래 누리지 못하신 것은 필시 이 이유 때문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신하의 심정은 또 어떠하겠습니까? 저 푸른 하늘은 어찌 그리도 한없는 곤욕을 주는지요. 어쩌면 저들이 우리에게 깊은 원한을 쌓게 해서 삼호(三戶)의 형세1)
1)
『사기(史記)』 항우 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로, 원수 갚음을 말한다. 초나라 장수 향연(項燕)은 진(秦)나라와의 전쟁에서 수 차례 승리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면서, “초나라가 비록 삼호(三戶)만 있더라도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초나라이다(楚雖三戶亡秦必楚). ”라는 말을 남겼다. 항우 본기의 주(注)는 ‘삼호’에 대하여 “초나라 사람이 진나라를 원망하여 비록 세 집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진나라를 멸망시키기에 족하다는 것이다. ”라고 풀이하였다.
성상께서 계책을 반드시 마음속으로 벌써 정하고 계실 줄 아오나 걱정되는 것은 완고하고 우둔하여 이것을 즐기고 수치심이 없는 일종의 무리들입니다. 만일 ‘우리는 이미 저들에게 몸을 굽히어 명분이 이미 정해졌다’고 한다면, 홍광 황제의 시해와 선조(先朝)의 수치에 대한 복수를 미처 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설이 행하게 되면, 공자 이래의 공명정대한 원리와 법칙이 일체 땅을 쓸 듯 없어지고 장차 삼강(三綱)이 아주 사라질 것이며, 구법(九法)
『서경』에서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법칙으로 제시하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리킴
이 폐하여 아들은 아비를 알지 못하고 신하는 임금을 알지 못하며 인심이 어긋나고 천지가 막혀 짐승의 종류가 될 것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에 시세를 헤아리지 않고 경솔히 오랑캐와의 관계를 끊다가 원수는 갚지 못하고 패배에 먼저 이르게 된다면, 또한 선왕께서 수치를 참고 몸을 굽혀 종사
를 연장시킨 본의가 아닙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에 굳게 정하시기를 ‘이 오랑캐는 임금과 아버지의 큰 원수이니, 맹세코 차마 한 하늘 밑에 살 수 없다’고 하시어 원한을 축적하십시오. 그리고 원통을 참고 견디며 말을 공손하게 하는 가운데 분노를 더욱 새기고, 금화를 바치며 와신상담을 더욱 절실히 하여 계책의 비밀은 귀신도 엿보지 못하게 하소서. 또한 의지와 기개의 견고함은 분육(賁育)
'종사' 관련자료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힘이 센 장사인 맹분(孟賁)⋅하육(夏育)
도 빼앗지 못하도록 하시고, 5~7년 또는 10~20년까지도 마음을 늦추지 말고 우리 힘의 강약을 보며 저들 형세의 성쇠를 관찰하소서. 그러면 비록 창을 들고 죄를 문책하며 중원을 쓸어 말끔히 우리 신종 황제의 망극한 은혜는 갚지 못하더라도, 혹 관문(關門)을 닫고 약속을 끊으며 이름을 바르게 하고 이치를 밝혀 우리 의리의 원만함은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패와 이둔(利鈍)은 예견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군신⋅부자의 사이에 이미 유감이 없다면, 굴욕을 당하고 구차하게 보존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일은 더욱 전하께서 한마음으로 근본을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자신을 극복하여 마음을 바르게 가져 집안을 다스려 충직(忠直)에 접근하게 하고, 공도(公道)를 넓혀 체통을 밝히고, 기강을 떨쳐 재물을 절약하며, 사치를 혁파하여 민력을 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지략이 용맹하고 총명하여 기세가 충만하게 한 다음에야 이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을 아무리 쉴 새 없이 말하더라도 한갓 헛된 말로 한때 듣는 사람의 마음만 즐겁게 할 뿐입니다. 옛날에 주자가 효종(孝宗)
에게 고하기를, “세상에 흔치 않은 큰 공은 세우기 쉬우나 지극히 작은 본심은 보존하기 어렵고, 중원의 오랑캐는 쫓아내기 쉬우나 한 몸의 사사로운 마음은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구차하게 대단한 말을 하여 폐하를 속일 수 없습니다. 오직 폐하께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사욕을 극복하여 정사를 수행하시면, 진실한 보람을 점차로 이룰 수 있습니다. 대개 이른바, 진짜 『역경(易經)』에 정통한 자는 『역경』을 말하지 않고, 참으로 회복에 뜻을 둔 자는 칼을 어루만지고 손바닥을 치는 그러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 근본은 위강(威强)에 있지 않고 덕업(德業)에 있으며, 그 방비는 변경에 있지 않고 조정에 있으며, 그 도구는 군대와 식량이 아니라 기강에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만세의 지론인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주자의 이 말을 좌우명으로 걸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살피소서.
'효종(孝宗)' 관련자료
아, 전하께서 이미 수치를 씻고 정의를 바로잡는 것으로 마음을 가지면 자기 한 몸은 돌아볼 것이 못 됩니다. 온 천하의 만물이 족히 나의 마음을 당할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안락의 즐거움과 재물을 구경하는 즐거움, 그리고 아첨꾼과 애첩의 사사로운 감정이 어찌 족히 조금이라도 그 뜻을 움직여서 떨쳐 일어나려는 공적을 방해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신다면 비록 벙어리⋅귀머거리⋅절름발이와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백배의 기운을 내어 큰일을 하시는 뜻을 도울 것입니다. 삼가 바라옵건대, 깊이 유의하고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다면 종사
와 백성의 다행이겠습니다.
'종사' 관련자료
『송자대전
'송자대전'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