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서도(西道)
때 임거정이 가장 큰 괴수였는데 원래 양주(楊州) 사람이다. 경기도에서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그와 몰래 통해, 관가에서 잡으려 하면 번번이 그 기밀이 먼저 누설되었다. 조정에서 장연(長淵)⋅옹진(甕津)⋅풍천(豊川) 등 너덧 고을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붙잡게 하여 서흥(瑞興)에 집결시켰는데, 적도(賊徒) 60여 명이 높은 데 올라 내려다보면서 화살을 비 퍼붓듯 쏘아 대므로, 관군이 드디어 무너지고 이로부터 수백 리 사이에 길이 거의 끊어졌다.
평안도
에는 큰 도둑이 많았다. 그 중에 홍길동(洪吉童)이란 자가 있었는데, 세대가 멀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장사꾼들의 맹세하는 말에까지 들어 있다. 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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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남치근(南致勤)을 토포사(討捕使)
무장한 도적이나 반란 세력을 토벌⋅진압하는 군사 책임자
로 삼아 재령(載寧)에 주둔시키자 적도가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가 험악한 기지에 나뉘어 항거하였다. 남치근이 군마를 집결하여 산 아래를 철통같이 포위하니, 적의 참모 서임(徐霖)이 마침내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항복하여 적의 허실과 정상을 모두 발설하였다. 드디어 군사를 몰아 소탕전을 벌이는 한편, 서임을 시켜 적당 가운데 억센 혈당(血黨)
생사를 같이하는 무리
대여섯 명을 유인하여 죽이니, 임거정이 골짜기를 건너 도망쳤다. 치근이 명을 내려, 황주(黃州)에서 해주(海州)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모두 징발하여 사람으로 성(城)을 만들고 문화(文化)에서 재령까지 낱낱이 수색전을 벌이자, 거정이 어느 민가로 들어갔다. 관군이 바로 포위하니, 거정이 한 노파를 위협하여 “도둑이야!” 하고 외치면서 앞장서서 나가게 하고, 활과 화살을 메어 관군 차림을 하고 노파의 뒤를 따라가면서 “도둑은 벌써 달아났다”고 외치니 관군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이 틈을 타 말 한 필을 빼앗아 타고 무리 속에 섞여 있다가 잠시 후에 다시 병든 관군이라 핑계하고 진중에서 빠져나가니, 서임이 발견하고, “저놈이 바로 거정이다. ”고 외쳤다. 이에 사로잡히자 큰 소리로 외치기를, “이건 모두 서임의 술책이었구나. ”라고 하였다. 3년 동안 몇 도(道)의 군사를 동원하여 겨우 도둑 하나를 잡았고 양민
으로 죽은 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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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숙종
때 교활한 도둑 장길산(張吉山)이 황해도에서 횡행했는데, 장길산은 원래 광대 출신으로 곤두박질을 잘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므로 드디어 괴수가 되었다. 조정에서 이를 걱정하여 신엽(申燁)을 감사(監司)
로 삼아 체포하게 하였으나 잡지 못했다. 후에 그 무리 중 한 명을 잡으니, 그가 숨어 있는 곳을 고하였다. 무사 최형기(崔衡基)가 나포할 것을 자원하고 파주에 당도하니, 장사꾼 수십 명이 말을 몰고 지나갔다. 한 사람이 고하기를, “저들은 모두 도둑의 무리다. ”라고 하므로 모두 잡아 가두었는데, 그 말들은 모두 건장한 암컷이었다. 그 사람이 다시 고하기를, “적의 말은 모두 암컷이므로 유순하여 날뛰지 않는다. ”고 하였다. 다시 여러 고을의 군사를 징발하여 각기 요소를 지키다 밤을 타 쳐들어갔는데, 적들이 이미 염탐해 알고 나와서 욕설을 퍼붓다가 모두 도망쳐 아무 자취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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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병자년(丙子年, 1696, 숙종
22)에 한 적도(賊盜)의 자백에 그의 이름이 또 나왔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 이 좁은 국토 안에서 몸을 숨기고 도둑질하는 것이 마치 새장 속에 든 새와 물동이 안에 든 물고기에 지나지 않는데, 온 나라가 온갖 힘을 기울였으나 끝내 잡지 못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꾀가 없음이 예부터 이러하다. 어찌 외군의 침략을 막고 이웃 나라에 위력을 과시하기를 논하겠는가?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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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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