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嶺南)
진주 민란
이방(吏房) 권준범 등 소살(權準範等燒殺) 부호가 소훼(富豪家燒毁)
'진주 민란' 관련자료
동치원년 임술년(1862, 철종
13) 2월 19일 진주민 수만 명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 몽둥이를 들고 무리를 지어, 진주 읍내에 모여 이서-이방과 하급 관리들의 집 수십 호를 태우니, 행동거지가 가볍지 않았다. 병마절도사
가 해산시키고자 시장에 가니 흰 수건을 두른 백성들이 길 위에 빙 둘러 백성들의 재산을 함부로 거둔 명목과 아전들이 억지로 세금을 포탈하고 강제로 징수한 일들을 면전에서 여러 번 질책하는데 능멸함과 위협함이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철종' 관련자료
'병마절도사' 관련자료
그리고 그 분을 풀기 위해 병사들을 병영
에 잡아들여 이방 권준범(權準範)과 관물(官物)을 사사로이 써 버린 이속(吏屬) 김희순(金希淳)에게 엄히 10여 대를 곤장으로 힘껏 때리고는 무리 지은 백성들이 계속해서 양 관리를 불 속에 던져 태워 버려 재도 남지 않았다. 이방의 아들 권만두(權萬斗)가 그 아비를 구하고자 했으나 또한 난민에게 밟혀 죽었다.
'병영' 관련자료
병마절도사
를 포위하여 한밤중까지 핍박하고 관아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본 고을의 이방 김윤구(金潤九)가 기회를 타 도망하였으나, 다음 날 수색 끝에 붙잡혀 또 두들겨 맞고 불에 타서 죽었다. 백성들은 이어 무리를 나누어 촌으로 나가 마동의 영장 정남성(鄭南星)⋅성부인(成富人), 청강 최진사(崔進士)의 세 집을 아울러 불태워 부수었다. 듣건대 이 3인은 경영을 잘하지 못해 원우(院宇)
'병마절도사' 관련자료
서원⋅사우(祠宇)⋅정사(精舍)⋅영당(影堂) 등의 통칭
에 백성을 절제 없이 부렸다고 한다.
영문(營門)
으로부터 이 광경을 듣고 논하여 글을 지어 공문서를 내었다.
'영문(營門)' 관련자료
『임술록』(영호민변일기), 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