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기국(理通氣局)’ 네 글자는 율곡
선생께서 이(理)와 기(氣)의 큰 근원을 통찰하신 것으로 이기론에 대한 탁월한 길잡이이다. 선생의 주장은 우계(牛溪)
선생과 주고받은 편지에 갖추어져 있는데, “이와 기는 원래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 핵심이다.
'율곡' 관련자료
'우계(牛溪)' 관련자료
원래 서로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형체⋅본말⋅선후가 없는 것이 이의 ‘통’이고, 형체⋅본말⋅선후가 있는 것이 기의 ‘국(局)’이다. 이것이 바로 이통기국의 핵심에 대해 8글자로 명명백백하게 밝힌 것이다. 율곡 선생의 뜻은 천지 만물은 기국(氣局)이고 천지 만물의 이는 이통(理通)이지만, 이른바 ‘이통’이라는 것은 기국과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기국에 나아가 기국과 섞이지 않는 그 본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지금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1641~1721)
선생의 「천명도(天命圖)」는 곧 이통을 따로 뽑아 위쪽에, 그리고 기국을 아래쪽에 따로 그려서 두 개의 동그라미로 잘라서 그렸으니, 상하가 분명히 나뉘어 이통은 기국의 앞에 있고 기국은 이통 밖에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이, 하나의 기 사이가 너무 심하게 떨어지니, 율곡 선생의 설이 어찌 이렇겠는가? 심지어 ‘태극(太極)’과 ‘천명(天命)’을 사람과 만물이 아직 태어나기 전의 천(天)의 이(理)라 하여 이통의 권역에 두고 그것을 곧 명(命)이요 근원[源]이라 하고, ‘오상(五常)’과 ‘물성(物性)’을 인물이 이미 태어난 후의 사물의 이(理)라 하여 기국의 동그라미를 메우고 그것을 곧 성(性)이요 유행[流]이라 하니, 이 무슨 말인가?
태극과 오상은 단지 이(理)이다. 천하의 사물 중에 이보다 더할 것이 없으므로 ‘극(極)’이라 한 것이고, ‘태(太)’는 그것을 높이는 말이다. 천하의 변화무쌍한 현상 속에서도 그 이를 변하게 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상(常)’이라 한 것이고, ‘오(五)’는 그 숫자를 일컫는 것이다. 천에서는 태극은 되지만 오상은 될 수 없으며 물에서는 오상은 되지만 태극은 될 수 없는 이치가 천하에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아직 태어나기 전이면 태극은 되지만 오상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이미 태어나면 오상은 되지만 태극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치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이통기국’이 아직 태어나기 전과 이미 태어난 후, 근원[源]과 유행[流]으로 나누어 이름 붙인 것이겠는가? 천이 없으면 성이 나올 수 없고 물이 없으면 명이 부여될 곳이 없으니, 성이란 것은 물에만 있고 천에는 없으며, 명이란 것은 천에만 있고 물에는 없는 것인가? 비록 일물(一物)에 근본하더라도 천에 있는 것은 명이라 하고 성이라 할 수 없고 물에 있는 것은 성이라 하고 명이라 할 수 없다면 반드시 천과 물이 둘 다 존재한 후에라야 비로소 성과 명이 갖추어질 것이다.
그러나 선후의 시간은 병립할 수 없으니, 비록 천하에서 뛰어나게 지혜로운 자라 하더라도 태어나기 전의 명과 태어난 후의 성을 어찌 일시에 병존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른바 ‘성’과 ‘명’은 전⋅후로 나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이통’과 ‘기국’이란 것 또한 마땅히 고(古)와 금(今)의 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만약 “사람과 만물이 성을 받은 후 따로 태어나기 전의 명이 있어 사람과 만물의 심에 모두 나란히 병립한다. ”고 한다면 일성(一性)과 일명(一命)이 겹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만약 “사람과 만물이 성을 받은 것 이 외에 따로 태어나기 전의 명이 있어 하늘에서 주장하고 추동한다. ”고 한다면 바로 또한 하늘과 땅이 곧 황홀하고 괴이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 몇 가지 설 이외의 것들이 곧 나의 설이다. 그렇다면 만물이 태어난 것은 유행이 되고 태어나게 한 것은 근원이 되며 천지는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만물은 태어난 것이니, 태극과 천명은 근원이 되고 오상과 물성은 유행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천지는 진실로 만물의 아버지지만, 천명도 과연 오상의 아버지인가? 만물은 진실로 천지의 아들이지만 오상도 정말 태극의 아들인가? 아버지의 경우에는 ‘통’이라 하고 아들의 경우에는 ‘국’이라 한다면 어디에 그 무형함이 있겠는가?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고 근원이 있고 유행이 있는데 어디에 그 본말이 없고 선후가 없는 것이 있겠는가? 게다가 천지가 진실로 만물을 낳고 원기가 또한 천지를 낳는데, 이렇게 되면 원기가 이통(理通)이 되고 천명이 도리어 기국(氣局)이 되는 것인가? 만물이 진실로 천지에서 생겨나고 만물은 또한 만물을 낳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앞의 만물은 태극이 되고 뒤의 만물은 오상이 되는 것인가? 천지의 앞에 여러 천지가 있고 만물의 뒤에야 비로소 만물이 생겨나는데, 그렇다면 태극과 오상은 본래 정리(定理)가 없고 이통기국(理通氣局)은 특정하게 가리키는 것이 없게 되니, 이것들이 낳고 낳아진 바의 사이에 선전하는 ‘허위(虛位)’에 불과한 것이란 말인가?”
어떤 이가 말했다. “기로 말하면 천 또한 기이니, 그 천이 기국에서 떨어져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로 말하면 원래 기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니 그 이가 허공에 걸려서 고립될 수 없는 것 또한 명백하다. 그렇다면 수암 선생의 뜻은 또한 이 기국에 나아가 겸지한 것을 오상이라 하여 아래에 그리고, 단지한 것을 태극이라 하여 위에 그린 것에 불과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 그런 것이지, 실제로 양자를 그렇게 떼어 놓고 설명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대는 어째서 말꼬투리를 잡아 뜻을 흐리면서 이 그림에 대해 그토록 심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가?”
대답했다. “설사 그대의 말과 같다 하더라도 그 겸지(兼指)한 것은 오상이 되고 단지(單指)한 것은 태극이 되는데, 이미 모두 의혹이 더해진다. 주자께서 ‘성은 형이상자로 태극이 혼연한 본체이고 그 커다란 강리(綱理)를 인의예지라 한다’고 하셨으니, 이에 근거한다면 태극과 오상이 어찌 단지와 겸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겠는가? 또한 사람은 인의롭고 소와 말은 밭 갈고 짐을 싣는 등 정연하게 조리가 있으니, 이는 실로 천명의 정분(定分)이 그런 것이다. 이 외에 다시 단지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물며 선생께서는 본디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말씀하셨으니 단지와 겸지가 어찌 이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는가?”
어떤 이가 말했다. “천명지성, 천지지성, 본연지성은 모두 단지한 일설이다. 인물지성, 기질지성의 경우에는 그 일설 중에 또 구별이 없을 수 없겠는가?”
내가 말했다. “이 또한 일설이다. 원래 기질지성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예컨대 사람이 인의롭고 소가 밭을 갈고 말이 짐을 싣는 것은 기질이 치우치고 온전함에 따른 큰 구분이고 선 일변에 나아간 것이다. 사람이 불인 불의하고 소와 말이 밭 갈고 짐을 싣지 못하는 것은 치우치고 온전한 구별 중에 세분되어 악 일변에 나아간 것이다. 지금 그 큰 구분으로써 ‘인물지성’이라 하고 세분한 것을 ‘기질지성’이라 하여 둘로 구별한다면, 의심할 바 없이 잘못된 것이다. ”
“그렇다면 자사(子思)께서 말씀하신 ‘솔성지도(率性之道)’는 바로 인간은 온전하게 받은 것이고 동물은 일부만 받은 것인데, 이것을 기질지성으로써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천명과 솔성 두 구절은 원래 모두 인간과 만물에 나아가 그 성과 도를 단지한 것이다. 성은 일본(一本)이고 도는 만수(萬殊)이니, 이미 만수라 했으면 치우치고 온전하고 넓고 좁은 것으로 리가 가지런하지 않다. 그러나 자사의 의도는 도에 있지 일찍이 기(器)에 있지 아니하니, 어찌 여기에 기질을 섞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위 구절은 성에 대해 말한 것이고 아래 구절은 도에 대해 말한 것이라 체와 용 사이에 그 구분이 저절로 있으니, 이른바 ‘성’이라는 글자를 여기에서 의론할 수 있는 바가 아님에 있어서랴? 주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명지성은 이를 전언(專言)한 것이니 만약 기를 겸하여 말한다면 다시 솔성지도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 하셨으니, 이 구절이 만약 기질로써 말씀하신 것이라면 상지(上智)⋅하우(下愚)가 모두 솔성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자께서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자사의 뜻과 주자의 말씀이 이와 같은데 지금 수암 선생께서는 천명의 성에서부터 곧바로 상지⋅하우의 일정한 선악으로써 말씀하시니, 이는 내가 알 수 없는 차원의 이야기로 끝내 혼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
어떤 이가 말했다. “수암이 해석한 이통기국도 율곡의 뜻이 아니고 수암이 해석한 천명⋅솔성도 자사의 뜻이 아니라면 그대는 이 그림이 전혀 참고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옛사람이 ‘자신할 수 없으면 스승을 믿으라’고 했는데, 그대는 자신하지 못하면서 어찌 조급히 스승의 설을 이와 같이 강고하게 불신하는가?”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대는 진실로 남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자신하지 못하기에 장차 스승을 믿으려 한다. 까닭에 밤늦도록 생각하고 아침에 또 생각하면서 스승님의 권위와 존엄에도 불구하고 묻고 따지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어리석음은 진실로 가련하지만 그 뜻은 또한 볼 만하다. 선배들의 말씀을 돌아보지 않고 사실을 탐구하지 않으며 그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오직 스승의 말씀만 믿는 것이 어찌 스승을 믿는 도이겠는가? 이 말을 함께 실어 이통기국변으로 삼는다. ”
『외암유고』권12, 잡저, 이통기국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