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주자장구 보록
『중용』이라는 글은 공자 문하의 도(道)를 전수하는 글이니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락(伊洛)1)
의 여러 군자가 이미 발명(發明)을 해 놓았고 또 회암(晦菴) 주부자(朱夫子)
1)
이락(伊洛) : 송나라 때 학자인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수학하던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주학
을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주학' 관련자료
주자를 말함
가 뒤이어 해석을 붙여 뜻을 남김없이 밝혔으니, 거기에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읽고 연구해 온 지가 지금에 어언 30여 년이 되었다. 매양 이 책을 읽다 보면 황연(恍然)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 시대의 고금(古今)과 지역의 원근(遠近)을 느끼지 못하곤 하였다. 그러나 글로는 할 말을 다 못하고 말로는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법이니, 장구(章句)와 문자(文字)를 통하여 전성(前聖)들이 주고받은 뜻을 그나마 이해할 수는 있지만 선유(先儒)들이 남김없이 말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의 의리(義理)는 끝이 없고, 성현의 말씀은 뜻이 깊다. 따라서 전인(前人)들이 대의(大義)를 밝혀 놓으면 후인들이 이를 다시 연역(演繹)하여 이미 말해 놓은 것을 인하여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을 더욱 발명하니, 이렇게 하여 문왕·무왕의 도가 실추되지 않고 사람에게 남아있는 것이며 그 도가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다.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전인들보다 더 나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또한 전인들이 후인들에게 기대했던 뜻이 아닐 것이다. 이에 나의 소견대로 원문의 서차를 정하고 뜻풀이를 하였으니, 도를 전수한 자사(子思)의 뜻과 사문(斯文)을 우익(羽翼)한 주자(朱子)의 취지가 1000년 뒤에 더욱 천명되어 혹 후학들에게도 도움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비록 어리석고 또 참람된 일이지만 감히 회피하지 않았다. 후세의 군자들이 나의 이 같은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는지.
주자의 장구는 이미 그대로 완성된 글이기에 감히 내 소견대로 인용하고 분열하여 취사선택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큰 줄거리는 이미 다 거론되었기에 지금은 다만 나의 하잘것없는 견해를 대략 수록하여 주자가 미처 드러내지 못한 여운(餘韻)과 유의(遺義)를 밝혀 보려 하였으니, 이름을 『주자장구보록』이라고 하고, 이로써 전현(前賢)을 조술(祖述)한 내 뜻을 밝히는 한편 동지(同志)들과 함께 토론하고자 한다. 우리 동지들이 행여 나의 광간(狂簡)을 이해하고 함께 득실(得失)을 논해 준다면, 실로 주자가 이른바 “천하의 공변된 의리를 모든 사람과 함께 의논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숭정(崇禎) 이후 무신년(1668) 1월 일, 천수후인(天水後人)은 한양 하동(夏洞)에서 쓰다.
중용(中庸)
중(中)이란 치우치지 않음을 말하고 용(庸)이란 언제나 일정함을 말한다. 치우치지 않음은 동정(動靜)을 겸하고 언제나 일정함은 종시(終始)를 관통한다. 이 편(篇)은 처음부터 끝까지 천명지성(天命之性)으로 말을 전개했는데, 중용이라는 것이 천명의 정밀하고 은미한 본체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책이름을 삼은 것이다. …(중략)…
이상은 제1장이다. 이 장은 성인이 하늘을 섬기는 도리와 군자가 도를 체득하는 일을 총론하였다. 맨 첫머리에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으며, 도를 닦아야 하는 책임은 사람에게 있음을 말하였다. 그다음으로 군자의 학문은 내 마음에 뿌리를 두는 것이며, 그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은 성경(誠敬)을 위주로 해야 함을 말하였다. 또 그다음으로 하늘이 내린 충(衷)이 성정(性情)을 벗어나지 않으니 대본달도(大本達道)가 여기에 있음을 말하였다. 그다음으로 군자가 도를 닦는 공부는 천지 사이에 드러나지만 그 시작에는 방법이 있음을 말하였다. 따라서 천인(天人)의 이치, 학문(學問)의 길, 성정의 덕, 성신(聖神)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제요(帝堯)가 이른바 “진실로 그 중을 잡아야 한다”라고 한 것과, 대순(大舜)이 이른바 “하늘의 명을 받들어 어느 때나 조심하고 무슨 일이나 조심해야 한다”라고 한 것과, 공자가 이른바 “인인(仁人)은 하늘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듯이 한다”라고 한 것과, 맹자가 이른바 “군자는 마음을 보존하고 천성을 배양하여 하늘을 섬긴다”라고 한 것이 모두 이러한 도(道)이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중용에서 말한 치중화(致中和)는 성인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니, 자사는 단지 전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또 이 장을 살펴보면 당연히 다섯 절목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즉 천명(天命) 이하 세 절목은 원두처(原頭處)에서 시작하여 지극히 가까운 곳까지 말하였고, 희로(喜怒) 이하 두 절목은 일용처(日用處)로부터 지극히 큰 데까지 확충해 나간 것이다. 위의 세 절목, 아래에 두 절목으로 나눈 것은 마치 『대학(大學)』의 경문(經文)에 전장(前章), 후장(後章)이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또 천명(天命)이 일상생활에 행해지고 외경(畏敬)이 위아래로 통하여 수미(首尾)와 거세(巨細)가 상응함을 볼 수 있으니, 선유(先儒)가 이른바 “덕행(德行)이 인간 윤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묘리가 성립되고, 외경(畏敬)이 일상생활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중화위육(中和位育)의 공효를 이룰 수 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유정부(游定夫)가 장횡거(張橫渠)의 정완(訂頑)을 읽고는, “이것은 중용의 이치이다”라고 했으니, 이 장(章)의 뜻을 알았다 하겠다. 이 아래 글들은 모두 이 장의 뜻을 부연해 나간 것이다.】
…(중략)…
『백호전서』권36, 잡저, 독서기, 중용주자장구보록
- 이락(伊洛) : 송나라 때 학자인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수학하던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주학
'정주학'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