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룁니다. 황제(黃帝) 이래 옛 책력(冊曆)은 육가(六家) 이후 한(漢)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서 낙하굉(洛下閎)이 『태초력(太初曆)』1)
을 만들었는데, 동한(東漢) 말기까지 무려 세 번이나 고쳐졌고, 위(魏)나라로부터 수(隋)나라에 이르기까지 또 고쳐진 것이 열세 번이며, 당(唐)나라의 책력도 여덟 번이나 고쳐졌습니다. 또 오대 시대(五代時代)의 책력은 팔가(八家)가 있으며, 남북조(南北朝)와 양송(兩宋)은 책력을 열한 번이나 고쳤습니다. 이는 책력이 오래됨에 따라서 시각의 차이가 나서 그러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소견이 각자 정밀하고 조잡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책력을 고치는 것이 이와 같이 빈번하였던 것입니다.
1)
한 무제 태초(太初) 원년에 만든 역서(曆書)다. 태초 원년을 역(曆)의 원점으로 하고, 그 체(體)는 19년 7윤법을 사용하였으며, 1년을 동지에서 시작하여 12등분하였다.
원(元)나라 초기에 이르러서는 곽수경(郭守敬, 1231~1316), 허형(許衡) 등이 역법
에 밝아 시각의 차를 정한 것이 매우 정밀하였는바, 절기의 영축(盈縮), 지속(遲速), 가감(加減)에 따른 차를 두어서 지원(至元) 18년(1281, 충렬왕 7)인 신사년을 역원(曆元)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이를 사용하여 무려 365년이나 되었지만 일식(日食)과 월식(月食)이 별로 착오가 없으니, 후세의 정교한 책력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천체(天體)의 운행이 매우 활발함에 따라 차가 날로 더 커져서 초저녁과 새벽에 나타나는 별자리의 위치가 조금씩 틀립니다. 천체 운행의 수가 이미 다 찼으므로 당연히 책력을 고쳐야 하는데, 서양(西洋)의 책력이 마침 이러한 시기에 나왔으니, 이는 참으로 책력을 바로잡을 적당한 기회입니다.
'역법' 관련자료
다만 한흥일(韓興一, 1587~1651)이 가지고 온 책력은 의논만 늘어놓고 작성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지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책을 제대로 알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10년을 파고든다고 하더라도 그 심오한 원리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은 병자년(1636, 인조
14)과 정축년(1637, 인조
15) 동안에 이미 역법
을 고쳤습니다. 그러니 내년의 새 책력은 필시 우리나라의 책력과 크게 다를 것입니다. 새 책력 속에 만약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조' 관련자료
'인조' 관련자료
'역법' 관련자료
외국에서 책력을 만드는 일은 중국에서 금지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비록 사람을 보내어 가르쳐 주기를 청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행(使行) 때 일관(日官) 한두 명을 데리고 가서 역관(譯官)
을 시켜 흠천감(欽天監)에 탐문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근년의 책력을 만드는 누자(縷字)를 알아서 그 법을 따져 보아 의심나고 어려운 곳을 풀어 온다면, 거의 추측하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략)……
'역관(譯官)' 관련자료
『잠곡선생유고』권7, 계사, 논역법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