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 조규
대일본국과 대조선국은 본디 우의를 두텁게 해 온 지가 여러 해 되었다. 지금 양국의 정의(情意)가 미흡한 것을 보게 되므로 옛 우의를 다시 닦아 친목을 굳게 다지고자 한다. 이에 일본국 정부는 특명전권변리대신(特命全權辨理大臣) 육군중장 겸 참의개척장관(陸軍中將兼參議開拓長官)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특명 부전권 변리대신 의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가려 뽑아 조선국 강화부에 이르도록 하고, 조선국 정부는 판중추부사 신헌(申櫶)과 부총관 윤자승(尹滋承)을 가려 뽑아 각자 받든 유지(諭旨)에 따라 조관(條款)을 의논해 결정하고 왼편에 열거한다.
제1관 조선국은 자주국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이후 양국은 화친의 실상을 표시하려면 모름지기 서로 동등한 예의로 대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경계를 넘어서 침범하거나 시기하여 싫어함이 있을 수 없다. 마땅히 먼저 종전의 교제의 정을 막아서 우환이 되었던 여러 가지 규례들을 일체 없애고 너그럽고 널리 통하는 법규를 넓히는 데 힘써 서로 영원히 평안하기를 기약한다.
제2관 일본국 정부는 지금부터 15개월 후 수시로 사신을 파견하여 조선국 경성(京城)에 가서 예조판서를 직접 만나 교제하는 사무를 상의할 수 있다. 해당 사신이 머물면서 오래 있을지 잠시 있을지는 모두 그 때의 사정에 맡긴다. 조선국 정부는 또한 수시로 사신을 파견하여 일본국 도쿄(東京)에 가서 외무경(外務卿)을 친히 만나 교제하는 사무를 상의할 수 있다. 해당 사신이 머물면서 오래 있을지 잠시 있을지는 또한 그때의 사정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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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관 조선국 부산(釜山) 초량항(草梁項)에는 일본 공관(公館)이 세워져 오랫동안 두 나라 인민이 통상하는 구역이 되었다. 지금 마땅히 종전의 관례와 세견선(歲遣船) 등의 일을 혁파하여 없애고 새로 세운 조관에 의거해 무역 사무를 처리한다. 또 조선국 정부는 모름지기 별도로 제5관에 기재한 두 곳의 항구를 개방해 일본국 인민이 오가면서 통상하게 하며, 해당 지역에 나아가 땅을 빌리거나 집을 짓고 혹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임시로 살고자 한다면 각각 그 편의를 따라 들어주도록 한다.
제5관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함경 5도 가운데 연해에서 통상이 편리한 항구 두 곳을 선택하여 지명을 지정한다. 항구를 여는 기한은 일본력(日本曆) 메이지(明治) 9년 2월, 조선력 병자년(丙子年) 2월부터 계산하여 모두 20개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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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관 조선국 연해의 섬과 암초는 종전에 자세히 조사한 적이 없어 지극히 위험하므로 일본국 항해자가 수시로 연해를 측량해 그 위치와 깊이를 재고 지도를 만들어 양국 항해자로 하여금 위험을 피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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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에서 지정한 각 항구에 재류하면서 만약 죄를 범하였을 경우 조선국 인민과 교섭해야 하는 것은 모두 일본 관원에게 귀속시켜 심의하고 밝힌다. 만약 조선국 인민이 죄를 범해 일본국 인민과 교섭해야 하는 것은 모두 조선 관원에게 귀속시켜 조사하고 밝힌다. 각각 그 나라의 법률에 의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추호도 두둔하고 편드는 일 없이 공평하고 이치에 맞음을 보여주도록 힘써야 한다.
제11관 양국이 우호 관계를 맺은 이상 마땅히 통상장정을 만들어 양국 상인들을 편리하게 한다. 또 아울러 현재 논의하여 제정한 각 조관 가운데 다시 마땅히 세목(細目)을 보완하거나 첨가해 조건에 따라 준수하는 것을 편하도록 한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을 넘기지 말고 양국은 따로 위원을 파견하여 조선국 경성이나 혹은 강화부에서 만나 상의하고 정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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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개국 485년 병자(丙子) 2월 2일
대관(大官)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신헌(申櫶)
부관 도총부 부총관(都棇府副棇管) 윤자승(尹滋承)
대일본국 기원 2536년, 메이지(明治) 9년 2월 26일
대일본국 특명전권변리대신 육군중장 겸 참의 개척장관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
대일본국 특명부전권변리대신 의관(議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고종실록』권13, 13년 2월 3일(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