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장령 곽기락(郭基洛)이 시폐(時弊)를 상소
하니 비답을 내렸다.
'상소' 관련자료
상소
에서 대략 말하기를, “신이 가만히 보건대, 요즘에 유생들이 상소문
을 올리는 것이 그만 풍습이 되어 경상도·충청도·전라도·경기도·강원도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 반년 동안이나 대궐 앞에서 호소하여 여러 차례 엄한 명령을 내렸으나 잠시 물러갔다가 또다시 와서 마치 큰 변고나 위급한 화가 당장 이를 것처럼 하면서, 임금의 명에 따르지 않고 극력 대항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간쟁
하였습니다.
'상소' 관련자료
'상소문' 관련자료
'간쟁' 관련자료
그 상소
는, 반드시 “정학(正學)을 옹호하고 사교(邪敎)를 배척해야 한다(衞正斥邪)
”는 것으로 제목을 삼고 이웃 나라와 사귀고 수교하는 것을 문제로 삼으면서, “온 나라 사람이 다 유교를 등지고 서양을 배우며 오랑캐의 옷을 입고 오랑캐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니, 그 우려하는 것은 깊지만 그 말은 지나칩니다.
'상소' 관련자료
'정학(正學)을 옹호하고 사교(邪敎)를 배척해야 한다(衞正斥邪)' 관련자료
대체로 우리나라가 일본과 관계를 허용한 것은 곧 견제하기 위한 계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 일본이 서양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서양 옷을 입고 서양 학문을 배우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금지할 바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이좋게 지낸 것은 바로 오직 일본뿐이었지 언제 서양 오랑캐들과 통한 적이 있었습니까.
예전에는 서양 오랑캐로서 몰래 우리나라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 백성을 충동하여 유혹하는 자가 있기만 하면 즉시 잡았고 잡으면 반드시 죽였습니다. 지금 설사 일본 사람 속에 뒤섞여서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종잡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교를 배척하는 우리나라의 법은 여전할 것입니다.
아, 우리 성조(聖朝)께서는 정학을 숭상하고 이단(異端)을 물리쳐서 만백성을 바르게 이끌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삼가 요즘에 내린 윤음(綸音)을 읽어 보니 도끼보다도 더 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의 바른 풍습을 지켜 오고 있으니, 만약 사교에 중독되어 물드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씨를 남기지 않고 다 없애 버릴 것입니다.
황준헌(黃遵憲)의 책에 대하여 말하더라도 그 글이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 그 말이 좋은가 나쁜가는 신이 진실로 모르겠지만, 그 대책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에 긴요한 적국(敵國)의 정황에 대한 일이었습니다. 그 대책을 채택하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오직 조정에서 상의하여 어떻게 결정해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으로서는 자기 나라의 중대한 일에 대하여 월(越)나라가 진(秦)나라 보듯이 어찌 머나먼 다른 나라의 일처럼 여기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거절하고 받지 않겠습니까. 신은 그 책을 받지 않는 죄가 받는 죄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 속에 ‘천주’요 ‘예수’요 하고 운운하는 등의 말도 다른 나라 사람의 글에서 설사 고약한 소리가 있었다 해도 어찌 규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어찌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그들의 논의를 따르고 그들의 교리를 행하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책을 받은 사신의 죄가 죽일 죄라고 한다면 책을 쓴 황준헌은 장차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십니까.
조정에서 정도를 옹호하고 사교를 배척하는 일을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진행한 만큼 아마도 사림(士林)
들 중에서 특별히 옹호해야 하고 배척해야 할 게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신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림(士林)' 관련자료
또 일본과 우리나라가 서로 왕래한 지 오래되었지만 요사이 듣건대, 부강해져서 옛날과 같지 않고 제멋대로 각국을 다녀도 막아 낼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설령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왕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제 교린
관계를 맺자고 와서 청한다면 의리상 거절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300년간이나 우호 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가 온 천하에 통상 규칙을 행하자고 요청하는 것을 무슨 말로 거절하며, 거절한다고 해서 안 오겠습니까.
'교린' 관련자료
불화하여 말썽을 일으켜 강한 적을 건드려 놓는다면 오늘 우리나라의 형세와 군사의 힘으로 능히 국경을 닫아걸고 조약을 끊어 우리 강토에 한 발자국도 들여 놓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버텨 내지 못하고 마지못해 그들을 따를 바에야 차라리 순순히 나아가 관계를 굳게 맺고 신의를 펴 보여 옛날의 좋은 관계를 두터이 한 다음 적당한 대책을 세워 자강(自强)하기를 생각할 따름입니다.
지금은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고 장단점도 따져 보지 않고 한갓 청의(淸議, 유림들의 여론)에만 의거하여 맨주먹을 부질없이 휘두르면서 “우리도 천승(千乘, 제후국)의 나라인데 그들을 두려워할 게 있는가”라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좁은 소견이고 꽉 막힌 논의로 저들의 비웃음과 모욕을 받기에 알맞습니다.
아, 돌아보건대, 지금 창고가 텅 비어 군사가 굶주리고, 사치를 숭상하여 나라도 개인도 재물이 고갈되었습니다. 뇌물이 성행하자 탐오(貪汚)한 짓이 자행되고 기강이 해이해지자 도둑이 횡행하며, 벼슬자리를 다투자 염치가 없어지고 언로(言路)가 막히자 아첨꾼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나라의 재정 형편이 어려워지고 백성의 생활이 곤경에 빠진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데, 그것이 지금보다 더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진실로 의당 어지러움을 다스리기를 반드시 물이나 불 가운데서 사람을 구하듯이 해야 할 것이니, 임금이 날이 밝기 전에 옷을 입고 저물어서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나라 정사에 매우 부지런히 하여 여가가 없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유생들의 입장에서 우리 임금께 말을 올리고자 한다면 이상의 여러 조목을 급하고 절박한 일로 여겨서 안으로 정사와 교화를 닦고 밖으로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기계(器械)에 관한 기술과 농업 및 수예(樹藝)에 대한 책과 같은 것도 만약 이익이 될 수 있다면 또한 선택하여 행할 것이지 굳이 그들의 것이라고 해서 좋은 법까지 아울러 배척할 것은 없다는 것을 환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유생들의 상소문
을 보면 큰소리와 잘난 체하는 이야기가 실용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집집마다 돈을 거두어 절반은 자기들의 주머니에 처넣고, 사람을 모집하여 인원수를 채우는데 그 중에는 콩인지 팥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지껄여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상소문' 관련자료
임금의 비답을 받고도 다시 상소
를 올리는 경우에는 상소문
을 올린 우두머리를 엄하게 징벌한다면 나라의 체면도 서고 나라 안의 소란도 멎을 것입니다.
'상소' 관련자료
'상소문' 관련자료
신은 지난번 이만손(李晩孫)과 강진규(姜晉奎)에게 내린 처분에 대하여 너무나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만손의 올리지 못한 상소문
가운데 흉측하고 패악스러운 문구는 감히 마음먹고 입으로 말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엄하게 신문하여 진상을 알아내어 전형(典刑)을 분명하게 바로잡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처분을 급하게 내린 것은 진실로 살리기를 좋아하는 큰 성인의 덕을 볼 수 있습니다.
'상소문' 관련자료
강진규에게 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흉칙한 상소문
을 지었는가 짓지 않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지었으면 죄가 이만손보다 더 무거울 것이고, 그것을 짓지 않았으면 이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상소문' 관련자료
삼가 바라건대, 엄하게 국문하여 반드시 사실인가 아닌가를 가려, 죄인을 신중히 처리하는 정사에 손상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여러 사람의 불어나는 의혹을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굽어살펴 주소서”
비답하기를, “당면한 폐단에 대하여 잘 말하였으며 자못 조리가 있으니 매우 가상하다. 마땅히 유념하겠다”라고 하였다.
『일성록』 245책, 고종 18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