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의 사상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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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오세창(吳世昌)
이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 오경석(吳慶錫)은 한국의 역관
으로서 당시 한국에서 중국으로 파견되는 동지사(冬至使) 및 기타 사절의 통역으로서 누차 중국을 왕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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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체재 중 세계 각국이 각축하는 상황을 보고 들으며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뒤에 각국의 역사와 흥망사를 연구하여 자국 정치의 부패와 세계의 대세에 뒤처졌음을 깨닫고, 언젠가는 장래에 반드시 비극이 일어날 것이라고 느껴 크게 개탄하는 바가 있었다. 이 때문에 귀국할 때 각종의 신서(新書)를 지참하였다.
아버지 오경석
은 일찍이 강화도조약
을 체결할 때에도 신헌(申櫶) 대신의 아래에서 크게 활동했다. 또 중국으로부터 그림이나 글씨를 다수 매입하여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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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오경석
이 중국으로부터 신사상을 품고 귀국하였는데, 평소 가장 친교가 있는 친구 중에 대치(大致) 유홍기(劉鴻基)라는 동지가 있었다. 유대치는 학식, 인격이 모두 고매하고 탁월하였고, 또한 교양이 깊은 인물이었다. 오경석
은 중국에서 지니고 온 각종 신서를 그에게 주며 연구를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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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두 사람은 사상적 동지로 결합하여 서로 만나면 자국의 형세가 실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움을 크게 탄식하고 언젠가는 일대 혁신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고 상의하였다. 어느 날 유대치가 오경석
에게, ‘우리나라의 개혁은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오경석
은 ‘먼저 동지를 북촌
(북촌이라는 경성의 북부는 당시 상류 계급이 있는 구역이다)의 양반
자제 중에서 구하여 혁신의 기운을 일으키는데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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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머지않아 한국 개조의 목탁이던 오경석
은 병을 얻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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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치는 오경석
보다 다소 나이가 적지만 오경석
이 죽은 이래 북촌
방면으로 교제를 넓히고 노소를 묻지 않고 인물을 물색하고 동지를 모아 갔다. 마침 그때 우연히 청년 김옥균(金玉均)
과 만나 세상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이 청년의 비범함을 알았다. 사상, 인격, 학문이 우뚝 솟아 무리에서 빼어나 장래 필시 큰일을 계획하기에 충분한 인물이 될 수 있음을 통찰하고 오경석
으로부터 얻은 세계 각국의 지리·역사의 번역본이나 신서사(新書史)를 김옥균
에게 읽도록 모두 제공하였다. 또한 천하의 대세를 열심히 설명하고 한국 개조가 급하다는 뜻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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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석
이 중국에서 체득하였던 신사상을 유대치에게 전하고, 유대치는 이를 김옥균
에게 전하여, 이에 김옥균
의 신사상을 낳기에 이른 것이다. 오경석
은 한국 개조의 예언자이고 유대치는 그 지도자이다. 김옥균
은 그 담당자가 되었다. 유대치가 김옥균
과 서로 안 것은 김옥균
의 나이 20세 전후 즈음이다. 김옥균
은 유대치로부터 신사상을 받아들임에 따라 한편으로는 세간에 널리 교유를 넓히고자 하였다. 또 나이 들어 과거
에 응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정계에 나아가 새롭게 관직의 길에 오르자 동지를 구하는 데 분주히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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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은 후일 일본 유람에 나섰는데, 나라를 구하고 개조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흥 일본의 형세를 시찰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그 일본행을 권유한 것도 유대치였음이 분명하다. 후일 갑신정변
을 거사할 때 김옥균
은 유대치를 방문하여 개혁의 실행을 의논하였더니 유대치는 과단성 있는 빠른 결정을 권하였다. 김옥균
이 그 사상에서도, 또 그 실행을 맞아서도 유대치에게 크게 힘입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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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이 유대치로부터 배웠던 사상 감화 외에 특별히 기술한다면 유대치의 불교 신앙이다. 유대치는 조선 학사(學士)가 의례(儀禮)에 있어서 오랫동안 도덕관념이 희박해짐을 한탄하고 김옥균
에게 권하여 불교 연구를 하게 했다. 유대치의 불교 신앙은 실로 두터워 그 인물이 욕심이 없고 담백한 것은 신앙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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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이 다른 사람과 달리 청년 때부터 불교 경전의 문구나 불교의 설을 종종 말하였던 것은 유대치의 감화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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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筠紀念會 編, 『金玉均傳』 上卷, 慶應出版社,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