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유생 이만손(李晩孫) 등 1만 명이 연명으로 상소
하여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
의 죄를 논하고 이어 척사(斥邪)
를 청하니, 임금께서 비답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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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모두 영남의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으로 유신(維新)의 정치를 도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곧 수신사
김홍집
이 가지고 온 황준헌(黃遵憲)의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 1책이 유포된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리며 이어 통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단(異端)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자에 대한 형벌이 국법에 드러나 있고, 그 무리에 가담한 자를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춘추(春秋)』에 실려 있습니다. 이를 따르면 바로 잡히고 이와 반대로 하면 혼란해진다는 사실은 영원히 똑같아 혹시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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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른바 『사의조선책략』에 대해 조목별로 분별해 보겠습니다. (『사의조선책략』에) 따르면, “오늘날 조선의 급선무는 러시아를 막는 것[防俄]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러시아를 막는 계책은 중국과 화친하고 일본과 결탁하고 미국과 연합하는 것[親中國 結日本 聯美國]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중국은 우리가 번국(藩國)이라 칭하는 나라입니다. 신의가 서로 두터운 지가 거의 200년이나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황제(皇帝)’요, ‘짐(朕)’이요 하는 두 존칭을 사양하지도 않고 태연히 수용하고 그런 말을 한 사람을 용납하고 그런 사람의 글을 받아들였다가 만일 중국이 이를 가지고 따지고 시끄럽게 떠든다면 무슨 말로 해명하겠습니까.
일본은 우리에게 얽매여 있는 나라입니다. 국경 요충지가 험준하고 평탄한 지형을 저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고,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를 저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우리나라가 대비가 없는 것을 엿보고 함부로 쳐들어온다면 장차 어떻게 막아 내겠습니까.
미국은 우리가 원래 잘 모르던 나라입니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의 종용을 받아 우리 스스로 (미국을) 끌어들여 풍랑과 바다의 온갖 험난함을 무릅쓰고 건너와서 우리 신하들을 피폐하게 하고 우리 재물을 자꾸 없앨 것입니다. 만에 하나 우리의 허점을 엿보고 우리의 약함을 업신여겨 응하기 어려운 청을 강요하거나 계속 댈 수 없는 비용을 떠맡긴다면 장차 어떻게 응대하겠습니까.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공연히 남이 이간질하는 말을 믿었다가 우리의 체통이 손상되는 바가 클 것입니다. 먼 나라와의 외교에 기대어 가까운 나라와 배척하는 전도된 조처를 했다가 헛소문이 먼저 퍼져 이것을 빙자하여 틈을 만들어 전쟁의 단서를 찾는다면 장차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물며 러시아와 미국과 일본은 모두 같은 오랑캐들이니 그 사이에 누가 더하고 덜하다는 차이를 두기 어렵습니다. 두만강 일대는 국경이 서로 접하여 만에 하나 저들이 일본이 과거에 했던 전례를 따르고, 새로 맺는 미국과의 조약을 끌어다 대어 땅을 요구하면서 와서 살고 물화를 교역하기를 청한다면 장차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하물며 세상에는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만에 하나라도 각 나라들이 이 일을 본받아 인상을 쓰며 일본이 한 것처럼 땅을 요구하고 화친을 청한다면 장차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허락지 않는다면 지난날의 성과는 다 쓸모 없게 되어 원수가 되고 온갖 원한이 쌓여 적이 되고 말 것은 단지 러시아 한 나라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허락한다면 세계의 한 모퉁이인 우리나라에 장차 받아들일 땅이 없게 될 것입니다.
황준헌의 말처럼 만약 러시아가 능히 병탄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침략할 뜻이 있다면 장차 만 리 밖의 구원을 앉아서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장차 홀로 도성의 군대를 일으켜 대적해야겠습니까. 이는 그 이해관계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조정에서는 얼마나 괴롭길래 이런 백해무익한 일을 해서 러시아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마음을 열게 하고, 미국과는 아무 일도 없던 것을 생겨나게 하여 병란을 초래하고 오랑캐를 부른단 말입니까.
그는 또 말하기를, ‘서학
에 종사하면 재물 모으기에 힘을 다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데 힘을 다하고 상공업의 발전에 힘을 다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재물과 농공(農工)은 원래 선왕의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법규가 있습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때에는 집집마다 어진 사람이 살았고, 주(周) 나라에서는 집에는 양식을 쌓아 두고 길 떠나는 자들은 전대를 걸머지고 다녔던 것이 어찌 일찍이 서학
에 종사하였기 때문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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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분통한 것은 저 황준헌이라는 자는 중국 태생이라 말하면서 일본의 연사(演士)로 행세하고 예수를 선한 신이라 하였으니 사문난적(斯文亂賊)
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난번 사악한 패거리와 비적들이 강화도에서의 패배에 분개하여 병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요행수로 차츰차츰 먹어 들어가려는 욕심을 부려 점차로 우리를 물들이려는 간계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감언이설로 꾀어 내는 것이 극도에 이르렀고 위협하는 말로 두렵게 하는 것이 심한 것입니다. 또 어찌 ‘전교(傳敎)가 무해하다’라는 말을 끝머리에 붙였겠습니까. 그 의도는 사교를 우리나라에 퍼뜨리려는 것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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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바라건대, 깊이 생각하시고 판단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쫓아 버리고 그 책은 물이나 불 속에 집어 던져 좋아하고 싫어함을 분명히 보이고, 중외(中外)에 포고하시어 온 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전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고, 주공과 공자, 정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더욱 밝혀 사람들이 모두 위와 친하여 어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백성이 의리로 성(城)을 이루어 비류와 사당이 간악한 짓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예의를 지키는 풍속을 장차 천하 만대에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황제께서 비답(批答)하기를, “간사한 것을 물리치고 바른 것을 지키는 일[闢邪衛正]에 어찌 너희들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다른 나라 사람의 『사의조선책략』은 애당초 깊이 파고들 것도 없지만, 너희들도 또 잘못 보고 지적함이 있도다. 만약 이를 빙자하여 또다시 번거롭게 상소
하면 이는 조정을 비방하는 것이니, 어찌 선비로 대우하여 엄하게 처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이 점을 잘 알고 물러가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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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儒生李晩孫等萬人聯疏論修信使 金弘集之罪仍請斥邪賜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