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리를 빚어 낸 원인을 찾아서 여러 사람의 분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동비(東匪)의 창궐이 필시 한 번 난리가 일어날 형편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으니, 이설(李偰)1)
이 말했듯이 여러 사람의 격변이 아니고서는 어찌 오늘과 같은 혼란에 이르렀겠습니까. 백성이 저들의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깔고 눕고자 함이 개인의 원수보다 심하니, 먼저 모름지기 죄를 열거하여 논하여서 속히 국가의 형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1. 성을 버린 죄를 다스리는 법률을 천명하여 왕법(王法)을 밝혀 주십시오. 국가가 태평한 지 오래되어 무릇 관직에 있는 자가 비록 성곽이나 군사를 믿지 못하더라도 어찌 하루아침에 무너져서 혹 성문을 열어서 도적에게 항복하고, 혹은 소문만 듣고 목숨을 아껴 도망하여, 한 사람도 도적을 막다가 죽은 신하가 없으니 한갓 국가의 수치일 뿐 아니라 사대부
의 수치를 남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는 반역도의 우두머리가 높은 관리를 죽이고 명망 있는 관리를 매질로 욕보여도 누구 한 사람 분연히 욕하고 굴하지 않고 죽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슬픕니다! 구차하게라도 살고자 하는 것이 풍습이 되어 신하의 절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국가의 법으로 단연코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생각하건대 이 두 조목이 비록 급하지 않은 것 같아도, 진실로 천명(天命)을 돌이키고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키는 데 제일 크게 관계가 있으니 마땅히 목욕재계하고 죄인의 죄상을 성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監司)
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마땅히 빨리 상주(上奏)하게 함으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전하의 윤허를 얻기를 기약해야 할 것입니다.
'사대부' 관련자료
'감사(監司)' 관련자료
1. 절의를 숭상하고 권장하여 윤리와 강령을 북돋아야 합니다. 이번 난리의 와중에서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는 비록 한 사람도 힘을 드러낸 자가 없지만 50주(州)나 되는 큰 곳에 열 집 정도의 신의를 다하는 집안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 백성의 호(戶)를 편제할 때 무릇, 효자, 열녀
, 충노(忠奴) 등 능히 그 본분을 다하는 자를 모두 찾아내어 특별히 포상함으로써 풍속과 교화의 근본을 북돋우어 주십시오.
'열녀' 관련자료
1. 공적과 죄업을 조사해서 결정하여 사족(士族)
들의 마음을 고무시켜야 합니다. 근래 경군(京軍)이나 향병(鄕兵)을 막론하고 도적을 토벌할 때의 조처가 올바르지 못하여, 혹 어떤 자는 적을 풀어 주어 환심을 사고, 혹은 어떤 자는 공을 꺼려하여 증오심을 파니, 사람들의 마음이 해이해지게 하여 나라를 위해 진실로 마땅함에 힘쓰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실정을 조사하여 보고하여 형벌과 상을 공정하게 하여 권선징악의 정사(政事)를 다하여야 합니다.
'사족(士族)' 관련자료
1. 이번 난리의 원인을 캐내어 난리가 일어난 싹을 끊어야 합니다. 오늘날 논의하는 자는 모두 말하기를, 수괴는 죽이고 추종한 자는 용서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당장의 일만을 생각한 의논입니다. 동학 도적들(東匪)의 요사스러운 말과 반역하는 행동에는 신민(臣民)으로서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 죽인 동비는 1만분의 1밖에 안됩니다. 병기를 감추고 인첩(印帖)을 묻어 두고서 다시 일어날 것을 준비하는 자가 서로 연결되어 바람과 티끌이 움직이기만 하면 반드시 다시 호응할 것입니다. ……(중략)…… 접주(接主)
와 성찰(省察) 등 무릇 명목 있는 자와 사교(邪敎)에 물든 자 및 흉악하고 완고한 도적 같은 자는 모두 풀을 베듯 짐승을 사냥하듯 소탕해야 하고, 그 나머지 귀화한 무리는 저절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접주(接主)' 관련자료
1. 징토(徵討)를 엄히 하여 민심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적을 따른 것은 혹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족
과 품관(品官)과 이서(吏胥) 등 일의 향방을 조금이라도 알 만한 자들로서 쉽게 죄를 범한 자들은 경중을 따지지 말고 모두 사형으로 논하여야 합니다. 대개 이 무리는 비록 명성과 지위가 없으나 곧 지방의 명망 있는 집안입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보고 본받는다면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질 것입니다. 이들이 만약 법망에서 빠져나간다면 국법은 어찌 쓰겠습니까. 조사(朝士)·음관(陰官)
·무관·문사(文士)·생원
·진사
중에서 죄를 지은 자의 경우에는 더욱 마땅히 벌을 중하게 해야 합니다. 혹자는 ‘위에 적은 두 가지 조목대로 한다면 죽는 자가 만(萬)을 헤아려 백성이 적어져서 무엇을 가지고 나라가 되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아, 이것은 어리석은 아이들의 견해입니다. 안개가 제거되지 않으면 해와 달이 밝지 않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또 살생의 운수가 흥하면 죽는 자가 반드시 많은 것은 예로부터 이미 그러했습니다. ……(중략)…… 대개 난리를 겪은 후에는 때를 구제할 인재가 없음을 근심할 뿐입니다. 진실로 법과 정치가 행해진다면 어찌 백성이 없는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지금의 비적 무리는 마땅히 죽여야 할 자로서 모두 죽이더라도 한 도에서 1만 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엇이 혹독함이 있겠습니까. ……(중략)……
'사족' 관련자료
'음관(陰官)' 관련자료
'생원' 관련자료
'진사' 관련자료
1. 세금을 감면해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살려야 합니다. 동비는 민란에서 시작되었고 민란은 세금을 무겁게 거두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근년에는 세금과 부역
이 해마다 증가하고 달마다 더하여 백성이 빨리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국가에서 어찌 일찍이 정액 외에 세금을 거두었겠습니까. 모두 부정한 수령과 간교한 서리가 우리 백성을 원수처럼 보아 착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산 채로 삼키고 껍질은 벗겨서 모두 죽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큰 난리를 겪은 상황에서 한 번 세금을 탕감하여 널리 임금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고, 서서히 과거의 제도를 논의해서 혁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논의하는 자가 비록 재정의 부족함을 근심하지만 ‘백성이 족하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불만족하겠는가’2)
라는 공문(孔門)의 말이 어찌 우리를 속이겠습니까.
'부역' 관련자료
2)
백성이 족하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불만족하겠는가 :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나오는 유약(有若)이 애공(哀公)에게 한 말이다.
1. 서리의 폐단을 없애 사회를 해치는 도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요즈음 경향(京鄕)의 서리가 나라의 큰 좀이 되었습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의 말이 거의 증거가 될 것이니, 호남 지방 서리의 폐단은 8도에서도 으뜸입니다. 호남 중에서도 전주 감영
이 더욱 심하고, 전주 감영
중에서도 저리(邸吏)의 폐단이 더욱 심합니다. 진상(進上)을 빙자하여 역가(役價)를 후하게 거두어서 큰 고을에선 수만 냥을, 작은 고을에서 수천 냥을 놓아 그 이자를 한 해에 3배를 거두었습니다. ......(중략)...... 이제 새로운 제도가 이미 정하여져 진상을 앞으로는 없애고 역가를 탁지부
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함부로 거두는 액수를 빨리 고쳐서 마땅한 방법을 마련하여 백성들의 삶을 펴게 해야 합니다. 외읍(外邑)에서는 서리의 정원도 또한 마땅히 고을의 대소를 헤아려서 그 수를 줄이고 인원을 정하여 영구히 준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식(曺植)' 관련자료
'전주 감영' 관련자료
'전주 감영' 관련자료
'탁지부' 관련자료
1. 지방의 장정으로 병제(兵制)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무력이 약하여 동비의 변란은 몸의 옴과 같은 존재인데도 만 리 밖 외국의 구원을 부르기에 이르렀으니 또한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지금 큰 난리가 대충 진정되었습니다. 쇠락한 도적들이 귀화하는 날에는 죽을 죄를 용서해 주고 그 중 날래고 건장한 자를 가려서 진영(鎭營)에 예속시키고, 다시 향민(鄕民) 가운데 수완이 있는 자를 골라 난리를 겪고 떠돌아다니는 자를 가려 만인을 합하여 서로 간격을 두어 배치하고, 기예를 익히고 기율을 엄히 하여서 일의 완급에 따라 믿을 수 있게 한다면 지방관
의 형세를 굳세게 하고 사특한 도적들의 마음을 깨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지방관' 관련자료
1. 향약
을 반포하여 풍속을 후하게 해야 합니다. 난리가 이미 평정되고 있으니 무(武)만을 숭상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친목하는 가르침과 사양하는 예법을 강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가까이 하고 어른을 위하여 죽을 의리를 알게 하여야 합니다.
'향약' 관련자료
……(하략)……
황현 편, 『갑오평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