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전란 시에는 싸움터에 나아가 장수가 되고 평상시에는 재상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여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며, 기강을 부식하고 업을 지켜 안주하며 그곳에서 나는 산물을 바치는 것이 사민(士民)의 대의(大義)라. 때때로 작록(爵祿)
의 대의라 할 수 있는가.
벼슬과 녹봉
을 먹고 살면서도 난세를 만나면 숨어 몸조심하여 임금을 불의에 빠지게 하고 아랫사람으로서 나아가 보필함이 없으면 이 어찌 군신의 대의라 할 수 있겠는가. 성대(聖代)의 덕을 입고도 오랑캐와 통하고 기강이 퇴패하여 성도(聖道)가 사라지고 있는데 밖으로 부식(扶植)함이 없으면 이를 사림(士林)
'사림(士林)'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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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스런 저 왜놈들이 들어와 개화를 읊조리고 조정의 간신들과 붙어서 함께 대궐을 범하고 난동을 일으키는데도 사직
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랴. 무릇 사방의 오랑캐들과 국교를 맺은 이래로 도시와 항구의 중요 이권은 거의 다 저들이 약탈하는 바가 되고 거기에 백 가지 폐단이 들고 일어나 삼천리 강산의 수많은 백성이 흩어지고 원성이 잇따라 들리니 이보다 더 큰 원한이 없도다.
'사직' 관련자료
지난 4월에 황도유회소(皇都儒會所)에서 임금을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뜻으로 유론(儒論)을 사방에 알렸도다. 먼저 호서와 영남에 가고 다음으로 호남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공감하여 죽음을 맹세하여 삼남에서 거의(擧義)하여 가장 급한 국정과 민원(民寃) 13조목을 아래에 기록하고 이에 감히 임금의 말씀을 엎드려 바라나이다.
바라옵건대 살펴보시고 이것을 나중에 임금께 아뢰어 각 도의 사림
중에서 어질고 선량하며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를 뽑아 위로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 나라를 보전하고 아래로는 빈사 상태에 빠진 백성을 보호하여 다시 문명의 훌륭한 시대를 복구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림' 관련자료
1. 요순(堯舜)의 법을 행하는 일. 맹자가 말하기를, 임금이 임금다워 지려면 임금의 도를 다하고 신하가 신하다워 지려면 신하의 도를 다하는 것이 군신의 대법(大法)이다. 요순공맹(堯舜孔孟)의 효제안민(孝悌安民)의 법을 행하는 것이 천하만국에 그 덕을 칭송 받는 이유이므로 대법(大法)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간언
하는 일.
'간언' 관련자료
2. 복식은 선왕의 복제를 본받을 일. 의제와 예절이 번잡하면 어지러워지는 까닭에 어지럽지 않고 사치스럽지 않은 선왕의 의제를 사용하는 일.
3. 개화법을 행할 때는 흥국안민(興國安民)의 법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음에도 흥국안민이 되지 못하고 뜻밖에 황궁의 변을 당하고 천황 폐하와 황태자가 독약(毒藥) 사건을 당한 후 충신 의사가 죽고 백성이 죽는 흉변이 계속 일어나 국가의 위기가 날로 더해 가니 무엇이 유익하다 할 것인가. 국민이 배고픔과 추위로 죽어도 돌아보지 않고 선왕의 예법을 밝히지 않고 기강이 퇴폐하였다. 이 때문에 민간이 화목하고 상하가 원망 없는 정법(正法)을 행할 것을 간언
하는 일.
'간언' 관련자료
4. 어진 황제가 위에 계시고 효제안민의 조칙이 지엄해도 혜택이 아래에 미치지 못한다. 백성이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죄에 빠지지 않도록 대신들이 임금의 은혜를 깊이 살펴 백성이 호소하는 글월을 폐하께 받들어 올려 일국의 흥인(興仁)을 꾀하는 것.
5. 근래 다른 나라로 곡류를 수출하는 것이 매우 많다. 이 때문에 곡가가 올라가서 가난한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시급히 방곡을 실시하여 구민법(救民法)을 채용토록 하는 일.
6. 시장에 외국 상인이 나오는 것을 엄금시키는 일. 근래 개항장 이외의 곳에 외국 상인의 출입이 심하여 도성의 시민들과 향읍의 시민들이 모두 곤궁하게 되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외국 상인을 엄금하고 구민법을 제정하여 외국 상인과 외국인이 시장에서 곡류를 매입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면 외국인 스스로가 미곡 매입을 그만두게 할 방도가 없어서, 나라의 큰 이익과 인민의 영리를 외국 상인에게 넘기게 될 형편이다. 따라서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외국인이 시장에서 곡물 매매를 금지시켜 흥국(興國)을 도모할 일.
7. 행상에게 징세하는 폐단이 심하여 시골의 영세 상인이 각지의 시장 또는 연안 포구에서 이익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폐단을 고치고, 민간에서 징세한 것을 모두 반환하고, 즉시 8도에 현재 있는 방임(房任)을 혁파하여 폐해를 제거하는 일.
8. 금광의 채굴을 엄금하는 일. 수십 년 전해 오던 전답 수만 섬지기가 금광 용지로 쓰여 영원히 황폐화되어 백성의 피해가 천만 금이 되었다. 또한 국가의 손해가 산과 들이 황폐화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따라서 금지시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책을 도모하는 일.
9. 사전(私田)을 혁파하는 일. 이제삼황(二帝三皇)
중국의 삼황오제
은 세금을 적게 거두고 항상 백성의 춥고 굶주림을 밤낮 걱정하였는데 지금의 소작료는 세금보다 10배나 무겁다. 백성이 춥고 굶주리는 데도 정부의 민정을 보살피는 것이 이와 같으니 무엇으로 백성의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게 할 것인가. 왕토가 사전으로 되어 백성이 굶어 죽게 되는 것은 목민(牧民)의 공법(公法)이 아니므로 사전을 혁파하고 균전(均田)으로 하는 목민법을 채용하는 일.10. 풍년에는 백미 1두를 상평통보전 30문으로, 평년에는 백미 1두를 40문으로, 흉년에는 1두를 50문으로 법을 일정하게 할 것. 세상인심과 물정을 살피건대 곡가가 오를 때는 즉시 모든 물가가 올라 인심이 흉흉해지고 인륜 기강이 무너지며, 곡물이 서울과 지방에 산같이 쌓여 있으나 가난한 사람은 오히려 그림의 떡과 같아 굶어 죽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 곡가가 저렴하면 인심이 풍요롭고 만물이 저렴해져, 친척⋅친구의 우애로운 정리가 풍비하여 가난한 자가 굶어 죽기를 면하게 된다. 따라서 만민의 희망을 받아들여 일정하게 곡가를 낮추게 하는 법을 만들어 구민책을 쓰는 일.
11. 악형의 여러 법을 혁파하는 일. 맹자가 말하기를 “좌우가 모두 죽여야 한다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가 죽여야 한다고 해도 듣지 마라. 나라 사람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한 후에 죽여야 할 것인지를 살펴 죽이는 까닭에 나라 사람이 그를 죽인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후에야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다” 지금 경향의 감옥에서 무고한 수만 명이 죽어 가고 있고 윤리와 기강이 밝지 못하여 도적이 점차 들끓는다. 이 때문에 옛날 계강자(系康子)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대부
가 도적을 염려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답하기를 “만일 그대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상을 준다 해도 훔치지 않을 것이다. 백천 가지 선정을 행해도 세금과 형벌을 엄하게 하면 백성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선왕의 대법에 따라 형벌을 감하고 세금을 가볍게 하여 어진 정치를 행하는 일.12. 함부로 소를 도축하는 일을 엄금하는 일. 근래 우역(牛疫)으로 죽는 소가 많아 팔도의 영읍(營邑) 및 시장 여염동리에서 도살하는 것이 날로 많아졌다. 이 때문에 종래 농사용 소 수십 마리를 길러 온 동리에서 최근에는 겨우 5~6마리를 키우는 데 불과하다. 이 때문에 농업을 그만두는 자가 많다. 즉시 궁궐에 바치는 것을 제외하고 소는 일체 도축을 엄금하여 농업을 그만두는 폐를 없애는 일.
13. 우리나라의 철도 부설권을 다른 나라에 주었다고 하는데, 4,000여 년 내려온 국가가 다른 나라에 허락된다면 만약 각국이 국토를 강하게 요구할 때에는 이를 양도해야 할 것인가? 도로는 인체의 혈맥과 같고 혈맥 없이는 삶을 바랄 수 없게 된다. 국내 철도 시설 용지로 인하여 만백성의 살 길과 수확하는 논밭 수만 두락에 손상을 가져온다면 국가의 피해가 이보다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철도 부설권을 허락하지 말 일.
『한성신보』, 1900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