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료는 동대문 평화시장의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였던 전태일(全泰壹, 1948~1970)이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과 근로감독관에게 근로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1960년대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잘 보여준다. 편지에 따르면 당시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10대 소녀들로, 열악한 환경의 작업장에서 매일 14~16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휴일은 한 달에 이틀,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것도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았다. 또한 이들은 허리도 펴기 힘든 좁은 다락방에 모여 작업했으며, 이 때문에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영양실조, 신경성 위장병, 호흡기질환, 눈병, 신경통 등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시다’로 불리는 어린 여공의 경우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해야 겨우 90~100원의 임금을 받았다. 이에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고 있던 전태일은 노동청이나 서울시청의 근로감독관 등을 찾아가 감독을 요구했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전태일은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작업시간 단축, 휴일 보장, 건강진단 실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작성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한국의 산업화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부는 영세한 국내기업의 자본을 국제적 수준으로 키우고, 수출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저임금 정책을 고수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청소년들, 특히 어린 여성들은 섬유‧직물‧전기기계공업‧의류 등 한국의 대외수출을 담당하는 산업부문에 종사하며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했다.

전태일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했던 인물이다. 대구 출신인 전태일은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1965년 동대문 평화시장의 ‘삼일사’에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그는 미싱사를 거쳐 1967년에는 재단사가 되었다. 전태일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착취당하는 어린 여공들을 돕다가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며 동료 재단사들을 모아 ‘바보회’를 조직해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노동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업주에게 해고당했고, 바보회도 해체되었다. 그는 1970년 9월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노동실태 조사 작업을 재개했으며,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작성해 여러 신문사에 투고하기도 했다.

업주와 근로감독관은 전태일에게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자 전태일은 보다 적극적인 투쟁방식을 선택했다. 전태일과 삼동친목회 회원들은 「근로기준법」을 고발하는 의미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결의하고 평화시장 앞에 모였다. 이들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했으나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자 전태일은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 쓰러졌다.

전태일의 죽음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언론은 노동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을 연일 쏟아냈고, 학생운동 세력은 전태일 분신사건을 계기로 노동현실에 주목하여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념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종교계도 전태일을 추모하며 노동문제를 고발했다.

전태일의 분신은 노동운동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태일 분신 직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李小仙, 1929~2011)과 삼동친목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결성되어 활발한 노동운동을 벌였다. 청계피복노조의 활동은 노동자들이 연대투쟁에 대한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연계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1970년대 이후 전태일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