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4. 근대 태동기의 정치[3] 붕당 정치의 전개와 탕평 정치

붕당 정치의 변질과 탕평론의 대두

숙종 때에 이르러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이 서로 교체됨으로써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하는 환국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대두되었다. 처음에는 서인남인이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며, 나중에는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소론이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이러한 환국을 왕이 직접 나서서 주도함에 따라, 외척이나 종실 등 왕과 직결된 집단의 정치적 비중이 커졌다. 정치 권력은 점차 고위 관원에게 집중되었으며, 언론 기관이나 재야 사족의 정치 참여가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붕당 정치의 기반도 무너졌다.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정치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왕권 자체도 불안해졌다. 이에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국왕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이 제기되었다.

숙종은 인사 관리를 통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파에게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 관리로 일관하여 환국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읽기자료

붕당 정치의 폐해

신축⋅임인년(1721, 1722) 이래로 조정에서 노론, 소론, 남인의 삼색(三色)이 날이 갈수록 더욱 사이가 나빠져 서로 역적이라는 이름으로 모함하니, 이 영향이 시골에까지 미치게 되어 하나의 싸움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서로 혼인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당색(黨色)끼리는 서로 용납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대체로 당색이 처음 일어날 때에는 미미하였으나, 자손들이 그 조상의 당론을 지켜 200년을 내려오면서 마침내 굳어져 깨뜨릴 수 없는 당이 되고 말았다. …… 근래에 와서는 사색(四色)이 모두 진출하여 오직 벼슬만 할 뿐, 예부터 저마다 지켜 온 의리는 쓸모 없는 물건처럼 되었고, 사문(斯文:유학)을 위한 시비와 국가에 대한 충역은 모두 과거의 일로 돌려 버리니 ……. 〈택리지〉

노론소론

노론송시열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대의명분을 존중하고, 민생 안정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에, 소론윤증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실리를 중시하고, 적극적인 북방 개척을 주장하는 경향을 보였다.

환국

서인남인을 역모로 몰아 정권을 독점한 경신환국(1680) 이후 서인노론소론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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