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5. 근⋅현대의 정치[2] 개화와 주권 수호 운동

흥선 대원군의 정책

19세기 중엽 조선 사회는, 안으로는 세도 정치에 저항하는 민중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양 열강이 침략해 오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1863)로 정치적 실권을 잡은 흥선 대원군은 왕조의 위기를 극복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즉,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 경복궁 중건, 비변사 폐지, 의정부삼군부의 기능 회복, 대전회통 편찬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였다. 또, 붕당의 근거지로 인식되어 온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는 동시에, 농민 봉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삼정을 개혁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노력하였다.

흥선 대원군병인양요(1866)신미양요(1871)를 거치면서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확고하게 유지하였다. 이러한 대외 정책은 외세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조선의 문호 개방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척화비(斥和碑)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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