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5. 근⋅현대의 정치[2] 개화와 주권 수호 운동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로 정부는 이를 반영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일본은 조선에 대한 간섭을 유지하기 위해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1894). 김홍집 내각은 농민의 불만과 개혁 요구를 반영하고자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였다(갑오개혁, 1894).

갑오개혁에서는 내각의 권한을 강화하고 왕권을 제한하였으며, 신분제를 철폐하고, 각종 폐습을 타파하였다. 또, 은본위 화폐 제도와 조세 금납화를 실시하고, 탁지아문이 국가 재정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고종은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홍범 14조를 반포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등의 삼국 간섭으로 일본의 세력은 위축되었다. 이 틈을 타서 명성 황후가 러시아와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켰다(명성 황후 시해 사건, 1895). 이 사건 후 개화파 정부는 개혁 사업을 다시 추진하면서 단발령 등을 실시하였다(을미개혁).

갑오개혁을미개혁은 전통적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농민층의 개혁 요구도 일부 반영한 개혁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가장 절실한 과제였던 군사적 개혁이나 농민이 요구한 토지 제도의 개혁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의 간섭을 배제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녔다.

전국의 유생과 농민은 명성 황후 시해와 단발령 실시에 항거하여 대대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의 의병유인석, 이소응, 허위 등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이 주도하였고, 농민층이 가담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읽기자료

홍범 14조의 일부 조항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의 관할에 속한다.
14. 문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구한국 관보〉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초정부적 심의 기구로, 이곳에서 심의, 통과시킨 의안을 국왕이 재가하면 국법으로 시행하였다.

홍범(洪範) 14조

갑오개혁이 추진되던 1894년 12월 12일, 개혁 추진의 의지를 밝히며 고종종묘에서 반포한 글

삼국 간섭

한반도와 만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요동 반도를 포기하도록 만든 사건
단발한 고종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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