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Ⅳ. 경제 구조와 경제 생활3. 근세의 경제[2] 양반과 평민의 경제 활동

양반 지주의 생활

양반의 경제 기반은 과전, 녹봉, 그리고 자신 소유의 토지와 노비 등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지주였으며, 주수입원은 토지와 노비였다. 특히, 양반 소유의 토지는 비옥한 토지가 많았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규모가 커서 농장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양반은 자기 소유의 토지를 노비에게 직접 경작시켰다. 그러나 토지의 규모가 커서 노비의 노동력만으로 경작할 수 없으면 그 주변 농민에게 생산량을 절반씩 나누어 가지는 병작반수의 형태로 소작을 시켰다. 양반은 자기 토지가 있는 지역에 집과 창고를 지어 놓고 직접 노비를 감독하고 농장을 살피기도 하였지만, 대개 친족을 그 곳에 거주시키면서 대신 관리하게 하였다. 때로는 노비만 파견하여 농장을 관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농장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더욱 증가하였다. 농장주들은 유망민을 모아 자신 소유의 노비처럼 만들어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게 하였다.

조선 전기에 양반은 10여 명에서 많게는 300여 명이 넘는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비를 사기도 하였지만, 주로 자신이 소유한 노비가 출산한 자녀는 노비가 되는 법에 따라 노비 수를 늘리기도 하고, 자신이 소유한 노비양인 남녀와 혼인을 시켜 늘리기도 하였다.

양반노비에게 가사를 돌보게 하거나 농경에 종사시키고, 옷감을 짜게 하였다. 다수의 노비는 주인과 따로 살며 주인의 땅을 경작하거나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양반은 이들 외거 노비에게 매년 신공으로 포와 돈을 거두었다. 이런 경제 기반을 바탕으로 양반은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녹봉 지급량

대략 정 1품은 곡식 97석, 삼베 21필, 저화 10장을, 종 9품은 곡식 12석, 삼베 2필, 저화 1장을 받았다.

조선 전기 양반의 토지 소유 규모

대략 200~300마지기 정도이나 2000마지기 이상의 소유자도 있었다. 대체로 논 한마지기의 넓이는 200평이다.

노비 신공

노(남자)는 면포 1필, 저화 20장, 비(여자)는 면포 1필, 저화 10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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