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Ⅳ. 경제 구조와 경제 생활5. 근⋅현대의 경제[1] 외세의 경제 침략과 국민 경제의 모색

정부와 민간의 식산흥업 노력

대한제국기에 들어 외세의 경제 침탈을 막고 근대적인 국민 경제를 수립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정치 및 행정을 맡은 경제 관료들을 중심으로 식산흥업 정책이 추진되었다.

정부는 전환국을 설치하여 화폐 제도 개혁과 중앙 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전⋅현직 관리와 민간의 자본을 모아 근대적 기업 설립에 나섰다. 또, 산업 기술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 설립에도 적극적이었다. 토지나 광산 개발을 외국인에게 넘기지 않도록 한 뒤 독자 개발을 시도하였으며, 쌀의 유출을 막기 위한 방곡령도 시행하였다.

제조업자와 상인도 경제 발전에 적극 노력하였다. 농기구나 일용품을 만들던 철기 및 유기 제조업, 정미업, 직포 공업 등에서 공장을 늘리고 새로운 기계를 외국에서 들여오거나, 자본을 모아 합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외국 상인의 침투에 맞서 상인들이 철시 투쟁을 벌였으며, 상인끼리 또는 상인과 관료가 함께 상회사나 금융 기관, 근대적 공장 설립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독립 협회나 황국 중앙 총상회 등과 같은 단체도 국내 산업 진흥과 상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외국의 이권 탈취 및 경제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정부와 민간의 식산흥업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자본의 축적과 근대적 금융 제도를 확립해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이 갖추어지기 전에 일제의 침략으로 식산흥업 노력은 좌절되었다.

읽기자료

상인들의 의식 변화

서울 시전 상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상업을 하는데 올바른 대신들의 공정한 법률 밑에서 장사를 해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근일 정부 대신들 밑에서는 상업도 못 하겠다 하고, 그저께부터 각기 폐시하고 독립 협회와 총상회의 목적을 따라 비록 군밤 장사까지라도 모두 일심이 되어 회중 소청에 가서 합동하였다는데, 경무관 안환 씨가 순검들을 많이 데리고 각 상인을 압제하여 억지로 가게 문을 열라고 한즉, 상인 제씨가 서로 말하기를 우리도 충군 애국하는 마음으로 소청에 가서 합동하겠는지라, 지금은 전과 달라 관인의 무례한 압제를 아니 받겠노라. 경무청에서 우리에게 자본금을 주어 장사시키기에 가게 문을 열어라 어찌하라 무슨 참견이뇨. 우리도 자유 권리로 하는 일이니 다시는 이따위 수작을 말라 하니, 안 경무관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알더라고 하더라. 〈독립신문, 1898. 10. 13.〉

식산흥업(殖産興業)

생산을 늘리고 산업을 일으키는 것

방곡령(防穀令)

흉년 등으로 쌀이 부족해질 경우, 지방관이 쌀의 수출을 금지하던 명령으로 조⋅일 통상 장정에는 1개월 이전에 일본 상인에게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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